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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

사근동, 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이다. 1973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에 왔으니 올해로 만 50년이 된다. 이 기간 중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것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조금 넘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학교 교육을 마쳤고, 사법시험을 합격해 법률가가 되었다. 결혼한 뒤 3-4년을 이 동네에서 살면서 딸 둘을 낳았다. 30여 년 전 강남으로 이사를 갔지만 교수가 되어 모교 한양대로 오는 바람에 나는 다시 이곳 사람이 되었다. 일과 중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이곳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것이 내 삶의 루틴이다. 요즘엔 제자들을 이곳으로 안내해 밥을 사주면서 때때로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물..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3년 공직 생활의 후유증이 꽤 크다. 환갑 넘기고 진갑을 목전에 두니 나이의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겉보기엔 학교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알게 모르게 무기력증, 우울, 고독이 수시로 찾아온다. 별일 아니려니 생각하고 일부러 잊으려 했으나 그럴 일이 아닌 것 같다. 상태가 어떤지 나 스스로를 관찰해 본다. 무엇보다 사람 만나기가 싫다. 이 증상은 공직으로 가기 전 이미 생겼다. 그것은 아마 교수라는 직업이 준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일을 함에 있어 특별히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 그저 연구실에서 혼자 있는 것에 만족했다. 공직 생활 중에는 공무상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런 중에도 사적 모임은 거의 안 했다. 사적인 모임은 대체로 저녁 시간대에 이루..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https://youtu.be/vir4EHc9qtU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 피부에 닿는다. 사위는 고요한데 어쩐지 마음이 울쩍하다. 책장을 넘겨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려봐도 글다운 글이 나오지 않는다.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하다가 유튜브에 들어가니 노래 한 곡이 보인다. 언젠가 정태춘이 바리톤 박정섭과 열린음악회에서 부른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 이 노래를 듣는 동안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세상은 이렇게 고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아픈데, 내 삶의 우울함은 하나의 사치다. 이들과 함께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나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내가 결코 저 육중한 쇳덩이일 수는 없지.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

내 삶에 감사

살다 보면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다. 살다 보면 우울한 일도 많지만 잘 생각해 보면 기쁜 일이 더 많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반, 책상 앞에 앉으니 사위는 고요하다. 모두가 새벽의 단잠 속에 빠져들어 간 이 시간에 조용히 내 삶의 감사함을 열거해 본다. 내 주변의 무탈함에 감사하다. 우리 집 아이들도 이제는 커서 내 곁을 떠났다. 둘 다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잘 살아가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형제들의 삶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야 많지만 과거보단 좋아졌다. 이제는 조카들도 커서 밥벌이를 하고 대부분 짝을 만나 결혼을 했으니 걱정거리가 줄었다.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의 걱정거리를 많이 가지고 가신 것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전화기 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했다...

글쓰기의 어려움

이곳에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글다운 글이 아니라면 굳이 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게,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글을 써, 가볍게 올리면 되지 무슨 그렇게 고민을 하느냐고 한마디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글을 쓰고 싶다. 오랜 기간 이곳에 들어와 남의 글을 보아왔다. 글 중에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글도 많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글. 허구한 날 세상과 사람을 재단하는 글. 과도하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글. 이런 글들은 가끔 보면 흥미가 가지만 매일 본다고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내 글은 어떤 것일까. 혹시나 선생티 내는 글로 또 다른 피곤 거리를 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나면..

일상의 습관에 대한 단상

며칠간 가족 없이 혼자 생활을 했다. 혼자 있으니 마음껏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나의 규칙적 생활에 잠시라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잠을 더 자 몸에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기상 시간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30분이나 빨라졌다. 새벽 3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바람에 평상시보다 더 피곤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30분도 자지 못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이 반복되었다. 왜 나는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몸에 밴 습관의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가? 인간은 습관의 노예다. 습관이란 오랜 기간 같은 일을 반복함에 따라 몸에 새겨진 일종의 자동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인간은 그에 좇는 수밖에 없다. 가끔 ..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페북)에 들어와 남의 글을 읽는 게 몇 년이나 되었는가. 족히 10여 년은 된 듯하다. 이렇게까지 이곳에 들어올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끔 이곳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뭔가를 남기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찾아 집중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을 들락날락할 것인가. 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마력은 특별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일지 모른다. 그들로부터 순간순간 어떤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런 마음보다는 존경심이 생겼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는가. 이곳을 돌아보면 도처에 스승이 있다. 잘만 ..

자리를 잘 찾아야

아침 출근 길에 아파트 정원 조경수를 유심히 보았다. 많은 나무들이 5월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무성해 지고 색깔은 짙어지고 있다. 그런데 몇 나무들이 죽은 시체처럼 서 있다. 소나무들이다. 재건축을 하면서 한 그루에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소나무를 아파트 이곳저곳에 심었는데 열 중 둘이 고사되고 있다. 지금쯤이라면 솔잎은 윤기가 흘러야 하고 솔잎 끝엔 송아가루가 풀풀 날려야 정상인데, 이 소나무들은 장례 치를 날만 기다리는 중환자들이다. 아니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져 밑둥을 잘라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에 도착해 연구동에 들어오는데 또 소나무를 만났다. 사실 나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인간이 이 소나무를 고문한다는 생각에. 2009년 로스쿨을 시작하면서 법학..

한미 핵협의 그룹(NCG), 그게 그리 중요합니까?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합니다. 어제 한미 정상간에 ‘워싱턴 선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는 이렇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상이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핵협의 그룹’(NCG)을 창설하기로 했다. 또한 북핵 위협에 대한 억지·방어 차원에서 공동 훈련·연습을 확대하고, 핵추진잠수함을 포함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도 늘리기로 했다. 다만 미국은 “한국은 비핵 국가 지위 유지 및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지속 이행을 약속했다”며 한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론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이것이 소위 말하는 북핵위협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NCG를 만든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북핵의 본질을 알면 저런..

카테고리 없음 2023.04.27

심심한 삶

내 삶은 심심하다. 음식은 짭조름한 것을 좋아하는데 삶은 싱겁기 그지 없다. 심심하다는 것은 단조롭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삶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루틴한 삶에 만족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내겐 이보다 좋은 삶은 없다. 나는 일찍 일어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4시 무렵 기상했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 들어선 3시쯤 깬다.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보지만 이미 잠은 저 멀리 도망갔다. 책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한다. 지난 2월 공직 퇴임 후 이 시간을 이용해 회고록을 썼다. 학교에 돌아 왔으니 학술 논문을 쓰는 것이 본업이라 생각하고 요 며칠은 거기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6시가 되면 부엌에 나가 빵을 굽고 과일을 깎아 팬에 넣고 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