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발틱제국을 가다

발틱 제국을 가다(1)

박찬운 교수 2022. 10. 4. 05:26


벌써 오래 전 일이다. 10년이 지나 가고 있으니. 나의 룬드시절(2012-2013) 발틱 국가(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여행한 일이다. 2013년 여름 귀국을 앞두고 동료교수 두 분과 함께 발틱 국가를 여행했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연구소 근처의 여행사 창가에 붙은 가격표를 매일 점검했다. 봄철 어느날 여름에 떠나는 발틱 여행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여행사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인즉, 연중 가장 싼 가격(지금 기억인데 8박9일에 60만원 정도)에 예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학교의 두분 교수(최태현, 김차동)에게 알리면서 발틱여행을 권했다. 이분들과는 이미 몇 곳(실크로드, 터키, 이집트)을 함께 여행했기 때문에 발틱여행도 죽이 맞을 것 같았다.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나는 여행사에 예약을 완료했다. 8박9일 동안 벤츠 버스를 타고 발틱해 국가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배로 스톡홀롬으로 와서 그곳에서 바로 룬드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이하는 당시 여행을 하고 돌아와 순서에 맞춰 사진을 배열하고 필요한 설명을 붙여 보관해둔 글이다. 거의 10년이 되니 새로운 설명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각은 심해졌다. 다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니 사진 밑에 추가적인 설명을 붙여 이곳 블로그에 올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중한 추억을 코로나 이후 여행을 꿈꾸는 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2006년 7월 6일 우리는 스칸도라마 여행사가 주관한 발틱라운드에 참여하여 말뫼의 외뢰순터미널을 떠났다. 차량에 탑승을 해보니 30여 명 모두가 스웨덴 노부부. 은퇴한 노인들이 여행을 하는 데 젊은(?) 한국 교수들 3명이 합류한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벤츠 버스는 두 시간 뒤 덴마크의 Gedser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독일 로스토크로 가는 페리에 승선했다. 사진은 승선을 기다리는 차량들.

게서에서 로스토크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뱃길이다. 승객들은 배에 오르면 차에서 내려 모두 갑판에 나가 발틱해를 바라본다.

페리 선상에서 먹는 첫 식사가 시작되었다. 많은 승객들이 부페 레스토랑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탓에 배는 고프고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모래 알도 삼킬 것만 같다.

이제 페리는 목적지 로스토크항에 들어섰다. 로스토크는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으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로스토크 대학이 있는 곳이다. 냉전 중에는 동독에서 가장 큰 항구로 대외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통독 이후 그 지위는 내려갔으나 여전히 북부 독일의 항구로서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로스토크에 도착하자마자 스칸도라마 버스에 탑승하여 폴란드로 향했다. 가는 도중 잠시 휴게소에 들렀는데 이 때 보지 못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여기 휴게소는 주유소와 화장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준비해간 음료를 꺼내 놓고 즉석 카페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버스카페>. 공짜는 아니다. 먹을 때마다 가이드(매트)는 그의 장부책에 표시를 한다.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 일괄 계산이 이루어진다.


<크와프제크>

7월 6일 첫 번 째 숙박지는 폴란드 크와프제크라는 도시다. 바닷가에 면한 조그만 도시인데 폴란드의 휴양도시다. 사진은 코와프제크의 중앙역.

코와프제크에 도착하여 짐을 푼 다음 저녁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북구의 여름은 길다. 밤 9시 가까이 되었지만 대낮 같다. 해변으로 가기 위해 걸어가는 도중 한 벤치를 발견했다. 무척 긴 벤치다. 편안하고 매우 실용적이다.

코와프제크 해변. 특별한 것은 없다. 발틱해는 여전히 잔잔하다. 해수욕을 하기에는 딱 좋을 것 같았다.

코와프제크에서 볼만한 것 하나는 바로 이 등대다. 해변 가장자리에 등대는 우뚝 솟아 있다.


<그단스크>

여행 이틀째 우리는 폴란드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인 그단스크에 점심 무렵 도착했다. 여기에서 식사를 하고 그단스크의 구도시를 돌아 보았다.

그단스크 구도시는 모드와바 강의 어귀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단스크, 독일인들은 이곳을 단치히라고 부른다. 원래 독일 영토였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이곳은 자유도시가 되었다.

발틱해로 나가고자 하는 폴란드는 이곳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 싶었지만 주민 다수를 독일인이 점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2차 대전 이후에서야 이곳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냉전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레흐 바웬사가 주도하는 연대(solidarity) 운동이 바로 여기에서 일어났다.

구도시에 들어서다. 구도시의 대부분 건물은 2차대전 중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대전 이후 복원된 것이다. 언뜻 보면 중세의 도시지만 사실은 현대건축물이다. 유럽인들의 사고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를 여기서 목격한다.

유럽의 주요도시 올드타운이 그렇듯이 건축 양식은 대부분 바로크다. 화려한 외관의 건물이 틈새를 두지 않고 나란히 늘어서 있다. 이 양식이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위엄과 권위 그리고 통일! 근대국가의 탄생과 이 양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도시의 시청사, 통상 구도시가 있는 유럽 도시에 가장 높은 빌딩은 성당인데 여기에서는 시청사이다. 그것은 이미 이 청사가 만들어질 때 세속의 권력이 교권을 능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도시 중심에 있는 넵튠 동상, 뒤로 보이는 건물들의 외관이 무척이다 화려하다.

2차 대전 중 그단스크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구도시 한쪽 끝에는 당시의 처참한 풍경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그단스크의 돔 성당, 성모 마리아 성당. 벽돌조의 이 성당은 내부로 들어가면 고딕양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명에 의하면 벽돌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고딕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에 사람들이 빽빽이 서 있으면 25,0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1945년 이후는 루터교회로 사용되는데,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루터교회라고 한다.


<무롱거버>

첫날의 숙소는 무롱거버의 마주리아 호숫가 호텔이었다. 이 호수는 예로부터 휴양도시로 이름이 높다. 지금도 독일인들이 여름에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마주리아 호수

우리가 묵은 마주리아 호텔

마주리아 호수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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