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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나이

독서와 나이 추석 연휴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중하던 논문 쓰기를 잠시 중지하고 책상 앞에 쌓아 놓은 책 중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나온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입니다. 책 두께가 제 베개 보다 두껍습니다. 무려 1400쪽.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읽고 있는데 끝까지 읽으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저 책을 다 읽으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턴뿐만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를 한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합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게 있다면 기억력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 감퇴를 느낍니다. 저 같은 사람은 사실 기억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인데 요즘 영 자신이 없습니다. 책..

민주당의 길

난세다. 어지러운 세상이라고 남 탓만 할 수 없어, 벽에다 낙서라도 하는 심정으로 길바닥에 침이라도 뱉는 심정으로, 몇 글자 쓴다. 나는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이 나라의 정치가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거라 예측했다. 대통령 당선은 불과 0.7% 표 차이의 결과였고 국회는 압도적으로 여소야대니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을 존중하지 않고는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이 식물정권을 원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타협정치를 할 것이고 어쩜 이것은 기성 정치를 혐오하는 윤대통령이 오히려 더 잘할지도 모를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허망한 것이었다. 지난 1년 이 정권은 야당을 존중하지 않았다. 정치적 쟁점에서 타협을 시도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돈 낭비, ..

민주당 혁신위, 변죽만 울리지 말고 혁신의 본질에 다가가라

오랫동안 정치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독립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개인의 정치적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다. 임기를 끝내고 자유인이 되었음에도 신중함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그 신중함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민주당에 고언을 한다. 이 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당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무엇일까? 민주당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를 발표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그렇게 하면 민주당 지지자들과 양쪽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중간지대 40% 국민들이 감동을 받아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선택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감동할만한 제안이 아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입법..

2023년 대한민국 인권정책의 현주소

완전 동면상태에 들어간 인권정책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매우 우울하다. 우울한 것을 넘어 병으로 도지기 일보 직전이다. 오늘은 내 전공인 인권분야에 대해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한 줄 언급이 없으니 나라도 알려야겠다. 나는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의 인권증진을 위해 미력이지만 할 일을 해온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은 제도적으로 보다 완비된 인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두 번(2005-2006 인권위 인권정책국장, 2020-2023 인권위 상임위원)에 걸쳐 인권위에서 일하는 동안 중점을 두었던 것이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정부에 권고하는 일이었다. NAP는 5년마다 정부가 수립하는 인권 종합계획으로 대한민국 중장기 인권청사진을 말한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

내 강의... 백천간두에 선 우리 외교

이번 학기 학부 강의(자유란 무엇인가)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내 강의에 중국 학생들이 대거 들어왔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20여 명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 학부 강의 때 중국 학생들이 한두 명 있었던 것은 기억하지만 이번처럼 많은 적이 없다. 나로선 이렇게 많은 중국 학생들이 들어왔으니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유익한 강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의실에 갈 때마다 오늘은 이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강의를 하면서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교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실수를 한다. 인권문제에서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판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중국 관련 주제가 나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편하게 말할 내용도 중국 학생들..

지성무식

지성무식 (至誠無息)이란 말이 있다. 중용에 나오는 말로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살아가는 태도는 지극히 성실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주말이면 단골 카페에 가서 창가에 앉아 오후의 거리를 바라본다. 이런 삶은 지난 10년 간 쉼이 없었다. 남들이 보면 지극히 재미 없는 삶이다. 가족들도 그리 말한다. 재미 없는 사람...이것은 내 인생의 결점인가 훈장인가? 그런 삶에 큰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관성적 습관에 불과할지 모른다. 습관을 벗어나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적없이 불안을 피해 안정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순간이든지 생각을 많이 해왔다. 지금 내 존재에 대해, 내가 살..

이 시대의 사상가가 쓴 동화 <엄마는 어디에>

https://www.youtube.com/live/idn-WxgETZ4?feature=share 2023. 6. 10. 서초동에서 이도흠 선생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이 북콘서트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눈부처 철학을 짧은 시간에 설명했다. 특강이 끝난 뒤에 나도 출연해 잠시 이선생을 소개하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휴일 새벽에 일어나 숙제 하나를 끝냈다. 한양대 이도흠 교수가 생애 최초로 쓴 동화 를 읽었다. 읽고 나니 이것이야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아동을 위한 책이지만 그보단 어른용 동화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이 시대의 사상가 이도흠 교수의 모든 철학이 동화의 형식과 표현으로 압축되었으니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도흠을 소개해야겠다. 수년 전 나는 그의 대저..

나라가 어지럽다

나라가 어지럽다. 나는 지난 정부 경찰개혁 과정에 열심히 참여했다. 개혁의 핵심은 검경수사권 조정만이 아니었다. 경찰 공권력 행사의 근본을 바꾸어 인권경찰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개혁위는 많은 것을 제안했고 경찰은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하나하나 제도를 바꾸고 현실을 바꾸어냈다. 그 중에는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있었다. 더 이상 차벽은 불가하고 더 이상 백골단은 불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각종 규정과 관행을 바꾸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정부 내내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경찰의 과잉대응은 없었다. 나는 몇 달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찰의 인권침해를 막는 역할이었다. 관련 소위원장 임무를 3년 임기 중 2년을 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인권..

흔들리는 오후

발걸음이 무겁다. 나는 집을 떠나 강남의 H카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딱히 일이 있어서도 누굴 만나기 위해서도 가는 것이 아니다. 주말 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가는 곳이 거기이기 때문이다. 몸속에 무슨 자동장치가 박혀 있는지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다. 나는 H카페 창가에서 두어 시간 거리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 삶의 중요 부분이다. H카페에 들어서자 홀은 텅 비어 있다. 가끔 이런 때가 있다. 바리스터 O양이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말 없이 눈인사를 하고 창가에 앉는다. O양은 능숙한 솜씨로 내 전용 카페라테 한 잔을 만든 다음 종을 울린다. “오늘 조금 날씨가 좋지 않네요. 교수님 안색이 좋지 않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무슨 ..

나의 시민인권교육 방법론

어제 수원시청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인권 강의를 했다. 내 강의에 참여한 공무원의 수가 800여 명. 절반은 현장에, 나머지 절반은 줌으로 연결해 참여했다. 내 인권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강의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고 그것을 90분 동안 아낌없이 토해냈다. 강의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참석자들 중 졸거나 자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공무원 인권교육에서 이렇게 조는 사람 없게 강의하기 정말 힘들다!) 강의가 끝난 다음 몇몇 직원은 나에게 찾아와 이렇게 수준 높으면서도 감동적인 강의는 오랜만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좀처럼 운전하지 않는 내가 수원까지 차를 몰고 가서 강의한 보람이 있었다. 요즘 인권교육이 이곳저곳에서 행해진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