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21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요즘 방송국 섭외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여러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니 그 관련 방송토론에 나를 초대하고 싶단다. 지금도 모 방송국 작가가 문자를 보내 왔는데 아무래도 그런 요청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요청이 올 때마다 대부분 거절한다. 얼굴 팔고 다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 내밀지 않아도 언론엔 이미 내 이름이 꽤 많이 나갔다. 페북 영향력이 대단해 이곳에 글 쓰는 것만으로도 내 입장은 충분히 언론에 전달된다. 포탈에 내 이름을 쳐보시라, 내 이름 들어간 기사가 셀 수 없이 많다. 사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쯤 대중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십 수 년 전 모 방송국에서 토론 프로를 만들면서 사회자로 나를 섭외했다. 그 요청을 받고 며칠..

행복에 대한 단상

빈센트 반 고흐, 첫 발을 뜨는 아기, 1890. 여기의 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나만의 행복은 없다. 모두가 행복해야 행복이다. 남자는 섹스를 할 때, 상대가 극적 쾌감을 느끼는데서, 절대적 만족을 느낀다. (아마 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남자의 오르가즘은 생식기의 마찰에서 오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나 없이는 죽을 것 같은 극한의 갈망을 표현할 때 대뇌를 통해 느끼는 지극한 충족감이다. 따라서 나의 행위를 통해 상대를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사실상 없다. 만일 그것을 통해서도 무언가 쾌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동물적 배설이 가져오는 신체적 변화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섹스를 배격한다. 인간의 행복도 따지고 보면 섹스와 마찬가지다. ..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나는 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지식인, 그중에서도 인문학자나 인문서 번역가들은 알기 쉬운 글을 쓰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을 읽는 저변이 넓혀진다. 왜 글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하는가. 왜 이해도 되지도 않는 번역을 하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쩌다 보니 글 쓰는 게 주업이 되었다. 하루 종일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일을 열어보고 답장을 쓴다. 학교에 가면 논문을 쓴다. 지난 몇 년간은 인터넷 공간에서 대중적인 글을 써왔다. 말도 그렇지만 글도 쓰면 쓸수록 는다. 십 년 전 아니 그 이전 글을 가끔 내놓고 들여다보면 지금 쓰..

자유인이 되는 길 -생각은 깊게 삶은 단순하게-

자유인이 되는 길 -생각은 깊게 삶은 단순하게- 2015년 파미르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오랜 기간 자유를 찾아 헤맸고, 그것을 삶에 실천해보고자 노력했다. 살다보니 자유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단순한 내 삶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매 학기 종강사를 대신하는 말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매우 강렬한 메시지다. 운동해서 건강하자 몸은 정신의 물적 기초다.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몸이 부실하면 결국 정신도 부실하다. 그러니 강건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몸 또한 부단히 강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꼭 몸짱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팔다리 튼튼하고 허구한 날 잔병으로 병원 신세 지는 것에선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건강..

캠퍼스 단상 -놀지 못한 인생-

캠퍼스 단상 -놀지 못한 인생- 지하철에서 나와 연구실로 오는 중 사방을 살펴보니 올해 축제는 유난히 화려합니다. 오늘 캠퍼스는 하루 종일 학생들 행사로 시끌벅적 할 것 같습니다. 밤엔 유명 연예인도 불러 한 바탕 놀 모양입니다. . 어제 수업 시간엔 이런 덕담을 했습니다. “이제 축제 기간이지. 긴장 풀고 마음껏 놀아 봐라. 얼마나 좋은 시절이니, 꽃다운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친구들과 밤을 새워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라. 내 수업만 아니라면 수업 빼먹어도 누가 뭐라 하겠니. ㅎㅎ” .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 한 켠이 조금 아려옵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저렇게 놀아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한 게 없습니다. 연구실로 들어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습니다. . 여러 페친 들..

독서하는 버릇에 대하여

독서하는 버릇에 대하여 . 2010년 처음으로 대중서를 출판했다. 책에 관한 책이었다. 품격 있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독서를 하십시오. 그것 없이는 어떤 품격도 불가능합니다. 그것 없이는 어떤 것도 사상누각입니다. 이 자명한 사실에 어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서를 제대로 하면서 사는 이는 대단히 적습니다. 독서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기에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은 다른 즐거움과 달리 일정한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이 즐거움을 맛보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면 어린 시절부터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혹시 상처가 될 말일지 모르..

점심단상

점심단상 . 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나는 일과 중 이 시간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시간에 밥도 먹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산책도 한다. 잘 가는 카페에서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운치가 있다)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카톡도 하고 페북도 한다. 내겐 이게 행복의 시간이다. . 특별히 약속이 있으면 동료 교수들이나 학생들과 함께 나가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나간다. 남들은 혼밥 먹기를 꺼린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 그런데 나의 이런 소소한 행복을 방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학교주변 식당에서 만나는 동료교수들이 내 밥값을 내주는 일이 많아 아주 부담스럽다. 우리 학교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내 주변엔 밥값 잘 내는 교수들이 ..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 나의 글쓰기 원칙을 볼 수 있는 2016년 출간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나는 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지식인, 그중에서도 인문학자나 인문서 번역가들은 알기 쉬운 글을 쓰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을 읽는 저변이 넓혀진다. 왜 글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하는가. 왜 이해도 되지 않는 번역을 하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어쩌다 보니 글 쓰는 게 주업이 되었다. 하루 종일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일을 열어보고 답장을 쓴다. 학교에 가면 논문을 쓴다. 지난 몇 년간은 페북 공간에서 대중적인 글을 써왔다. 말도 그렇지만 글도 쓰면 쓸수록 는다. 십년 전..

나는 그들보다 행복하다

나는 그들보다 행복하다 런던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내 자랑으로 들릴런지 모르겠다. 뭐 그렇게 본다면 어쩔 수 없다. 페북에서 이렇게라도 자랑질을 하지 않으면 어디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랴. 나는 지난 반년 간 런던에서 혼자 생활했다. 나이지리아 형제들로부터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그 친구들과 함께 부엌과 거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렇지만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런던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엔 없었다.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나로선 큰 불편함 없이 잘 살았다. 그 생활은 이런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6시 반이 되면 부엌으로 나가 그릇에 바나나 하나를 얇게 잘라 넣고 시리얼 한 줌을 넣은 다음 우유를 붓는다. 빵을..

걸으면서 생각하다

걸으면서 생각하다 이제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학이 없는 많은 분들에겐 좀 미안합니다. 놀고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땀 흘리는 만큼 책을 보고, 글을 쓰겠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생각하고 시야를 넓히겠습니다. 방금 전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학교 뒷골목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 갑니다. 후배, 제자들과도 가지만 가끔은 혼자도 갑니다. 이제 방학이 되니, 마땅히 같이 갈 밥 친구도 없어, 오늘은 혼자 가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의례히, 저는 점심을 먹은 뒤엔 산책을 합니다. 3킬로미터 정도 학교 주변을 걷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습니다. 걸으면서, 철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도 느끼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슴 속에 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