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검찰개혁, 청렴국가에서 배우자

박찬운 교수 2015. 9. 28. 20:57
[시론]검찰개혁, 청렴국가에서 배우자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검찰개혁 방안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상설특검제이든,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공직비리수사처 설치든 방점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변화를 주어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해야겠다는 데에 찍혀 있다. 그런데 예상대로 검찰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검찰수뇌부는 대선 후보들의 검찰개혁안을 “검찰을 무력화·형해화하려는 시도”라고 하면서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먼 이국 땅 스웨덴에서 듣고 있는 나로서는 착잡하기 그지없다. 검찰수뇌부의 조직보호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중수부장을 지낸 분까지 이제 좀 고쳐보자는데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검찰 말대로 99.9%의 사건에서 정의를 실현하면 무엇하랴. 0.1%의 사건에서 온갖 비난을 듣고, 그로 인해 검찰의 신뢰는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0.1%의 사건에 대해 검찰권 행사를 달리 해보자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국민들이 이만큼 참아주었으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근원적 해결책에 눈을 돌려야지 비새는 집을 보수해서 그냥 살 때가 아니다. 기소독점주의는 금과옥조가 아니다. 범죄에 대응하는 수사제도와 기소제도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하다. 어느 한 가지가 절대선이 될 수 없다. 검찰은 상설특검이나 공수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세계 유례없는 제도” 운운하지만 투정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스웨덴 이야기 하나 해보자. 잘 아는 바와 같이 스웨덴은 청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2010년 국제투명성기구 자료에 의하면 스웨덴은 세계 3위의 청렴국가이다. 이곳에 와서 놀랐던 것이 공직자 사무실을 가면 거의 대부분이 투명 유리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공직자에게는 어떤 비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있겠지만 제도를 연구하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이 나라가 국가권력을 다양하게 분권화시켜 권력 간에 항시 견제가 가능하도록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스웨덴 검찰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국적 검찰 조직이 있다. 일반 사건은 이들이 대체로 담당한다. 그런데 스웨덴에는 우리에겐 생소한 몇 개의 특별검찰이 존재한다. 우선 가장 강력한 특별검찰은 국회가 만든 옴부즈만(Justitieombudsmannen)이다. 이 옴부즈만은 우리나라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국민권익위원회와는 그 위상이나 권력 수준이 사뭇 다르다. 이 기구의 기본적 임무는 공직자에 대한 사정감시다. 위법한 행위가 적발되면 대개는 징계로 끝나지만 그 행위가 중대한 법률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 기구는 직접 수사와 기소권을 갖는 특별검사로 돌변한다. 
 
정부 내에는 두 개의 특별검사가 있다. 하나는 300년 전통의 감찰관(Justitiekanslern)이다. 이 감찰관은 정부 내 옴부즈만인데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특별검사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1980년대에 경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경제사범특별검찰청(Ekobrottsmyndigheten)이다. 이곳에서는 경찰관과 파견 검사들이 힘을 합해 특정 경제사범에 대하여 수사와 기소를 담당한다. 이처럼 스웨덴에서는 우리와 같은 검찰도 존재하지만 몇 개의 특별검찰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상호 견제하며 수사 및 기소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제도적 측면에서 스웨덴을 청렴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한 가지 유의할 만한 것은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투명도가 가장 높은 10개국 모두가 권력 간의 균형과 견제가 잘 되고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명확하다. 권력 간의 균형과 견제의 원칙을 검찰개혁에서도 최우선적 원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와 같이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하다. 검찰에 검찰권을 보장해주면서도 필요한 부분에서 최소한의 보충적 권력분산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 검찰이 신뢰를 받고, 우리 사회가 보다 투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것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대선 후보,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경향/2012.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