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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심-법률 실무가 정체성 회복을 위해 법서와 씨름하기-

새로운 결심-법률 실무가 정체성 회복을 위해 법서와 씨름하기- 세상이 어지럽다.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나도 언제 몸을 일으켜야 할지 목하 고민하면서도 골방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지금 이 시기 내 할 일은 이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큰 결심을 했다. 법률 실무가의 정체성을 회복하기로 하고 일대 용단을 내렸다. 무슨 말이냐고? 변호사 활동을 위한 기본지식 재무장에 나선 것이다. 실무가에게 제일 필요한 법률 지식을 높이기 위해 민법 교과서를 출발점으로 변호사 시험 과목 전체 교과서를 앞으로 몇 달간에 걸쳐 읽기로 했다. 법률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선 강의와 시급히 써야 할 논문 ..

금요 단상-연구실을 둘러보며-

금요 단상-연구실을 둘러보며-  금요일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다음 주 강의를 준비합니다. 저는 연구실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는 이곳에서 학문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제 의지대로 이곳에서 제 하고 싶은 연구를 합니다. 저는 이 공간의 완벽한 성주입니다. 이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강의 준비를 얼추 마치고 잠시 연구실을 둘러보면서 옛 생각에 빠집니다. 제가 어렴풋이 학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때가 대학 4학년 겨울(1984년)입니다. 저는 그때 철이 들고나서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봅니다. 그해 가을 사법시험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거든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다 생각하니 마지막 겨울방학을 무엇인..

나의 소박한 한강론

나의 소박한 한강론 며칠 동안 한강의 소설, 와 를 읽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은 온통 이 두 소설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몇 자 적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두서 없는 글을 쓴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수년 전 맨부커상을 수상 소식으로 가 알려졌을 때 우리 문단에 한강이라는 작가가 있음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채식주의자’를 상찬했음에도 내게는 그 작품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났더니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무언가 다른 스타일의 소설임은 분명했지만 평소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나 같은 수준의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를 읽으니 비로소 한강이 보인다. 그저 나오는 대로 말한다면, 한강이 노벨상을 받은 것..

한강에 열광하는 이유

한강에 열광하는 이유  한강에 대한 인기가 실로 뜨겁다. 12월 노벨상 시상식이 있으니 적어도 그 때까지 이 열기는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한강이 받는 찬사는 노벨상의 위력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의 또 다른 작가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해도 이 정도의 독자의 반응과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한강은 왜 이다지도 많은 이의 찬사의 대상이 되는가? 당장 세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그의 공감의 언어가 독자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루만진 현대사의 희생자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역사의 방조자였다. 한강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하게 다가와 말한다. 잠시라도 희생자가 되어 그들이 느낀 ..

나는 정말 즐겁게 사는구나-Gracias a La Vida-

나는 정말 즐겁게 사는구나-Gracias a La Vida-  누군가 간간히 제게 묻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요. 저의 무미건조함에 대해 걱정하는 모양입니다.이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즐겁게 사는지 당당히 말해야겠습니다. 한강 작가 이야기 듣고 자신감을 가졌어요 ㅎㅎ.매일 걷습니다. 때론 명상을 하며 걷고, 때론 맛집을 찾아 걷습니다. 요즘은 아기자기한 카페에 걸어가서 카페라테 한잔하는 게 즐겁습니다.매일 독서를 해 마음의 근육을 키웁니다. 걸어서 육체의 근육을 키우는 것만큼 마음 근육키우는 것을 즐겁게 합니다.방학이 되면 배낭을 짊어지고 전국 여기저기, 세계 이곳저곳을 다닙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술을 즐겨 마시진 않지만 아주 못마시진 않습니다. 가..

나는 그날을 기대한다-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나는 그날을 기대한다 어젯밤 속보로 뜬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 국민이 들뜬 모양이다. 뉴스도 SNS도 이 소식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페북에 들어와 보니 페친 들의 축하 글이 피드 전체를 채우고 있다. 진짜 축하할 일이다. 나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학교에 오면서 2호선 전철로 한강을 넘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결이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망막에 맺힌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강은 어떻게 노벨 위원회의 심사과정을 통과해 수상자로 선정되었을까? 기적이 일어난 것인가? 학교 선생으로서 부끄런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기말이 되면 나도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 평가를 하지만, 논술 문제를 채점할 때는 항상 공정성과 객관성에 자신이 없다. 잘 쓴 답안을 A, 못 쓴 답..

홀로코스트에서 언어를 발명하다-영화 ‘페르시안 레슨스’(페르시아어 수업)-

홀로코스트에서 언어를 발명하다-영화 ‘페르시안 레슨스’(페르시아어 수업)-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머릿속에 강렬한 여운이 남는 것을 보면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영화다. 다만 그것을 딱 집어내기가 어렵다. 나치의 만행 홀로코스트를 그린 영화는 많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모두 내 심경을 흔든 영화다. 공통점은 영화가 끝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는 것.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독가스실에서 죽어갈 때 마음이 편할 수가 있겠는가. 이 영화도 그랬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날 때 한 번 크게 웃었다. 비극 속에서 희극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 페르시안 레슨스(Persian Lessons)는 4년 전(2000) 코비드 19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개봉..

영화이야기 2024.10.01

서초동 법정에 엘리베이터가 생긴 내력에 대하여

서초동 법정에 엘리베이터가 생긴 내력에 대하여 오늘 오후 산책을 하다가 오랜만에 서초동 법원 경내를 들어갔습니다. 법원이 집 근처에 있지만 경내를 들어와 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 일입니다. 제가 정확히 2004년 말에 변호사 일을 정리했으니 매일 같이 법원을 들락날락한 것이 꼭 20년 전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빠름에 놀랍니다. 법원 경내를 둘러보니 20년 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가지 않아서인지 마치 울창한 숲속을 거니는 것 같았습니다. 쌍둥이 법원 청사는 여전히 우뚝 서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조그만 건물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적인 건물이 어느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서초동..

<교정판례백선>이 출간되다-지난 30년 나는 무엇을 했는가-

교정판례백선>이 출간되다-지난 30년 나는 무엇을 했는가-  매우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교정판례백선>. 우리나라 형사절차에서 구금 당한 피구금자(피의자, 피고인, 수형자)의 인권과 관련된 법원 판결, 헌재 결정,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해설한 책입니다. 우리 인권 역사에서 역사적인 저술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내기 위해 6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저도 영광스럽게 참여해 두 꼭지의 글을 썼습니다. 부디 이 책이 널리 익혀 우리나라의 피구금자 인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회고하면, 저에게 있어 피구금자의 인권문제는 매우 역사가 긴 과제였습니다. 30년이 넘는 동안 이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교정판례백선을 받아보니 몇 가지가 선명하게 기억나는군요. 잠시 정리해 보겠습니..

새벽단상-몸이 기억한다는 것-

새벽단상-몸이 기억한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란 머리로 하는 것으로 알지만 몸으로도 합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 나도 그런 게 있지‘ 라고 말할 겁니다. 제 경우는 한자 쓰기가 그렇습니다. 요즘 세대는 한자를 잘 모릅니다. 법률 용어는 거의 100 프로 가깝게 한자어임에도 정작 그 한자를 모른 채 공부를 합니다. 법학도가 그런 정도니 일반 학생들의 한자 이해력은 바닥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데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강의를 할 때 판서의 절반은 한자로 채웁니다. 어려운 한자를 쓸 때는 한자를 먼저 쓰고 한글을 달아줍니다. 이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