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박찬운 교수 2023. 5. 6. 04:27
나도 대단한 거는 아니겠지만 뭔가는 탈렌트가 있을 것이다. 볼품 없는 눈사람. 올 연초 눈이 내렸을 때 사무실 옆 데크에 나가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페북)에 들어와 남의 글을 읽는 게 몇 년이나 되었는가. 족히 10여 년은 된 듯하다. 이렇게까지 이곳에 들어올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끔 이곳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뭔가를 남기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찾아 집중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을 들락날락할 것인가. 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마력은 특별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일지 모른다. 그들로부터 순간순간 어떤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런 마음보다는 존경심이 생겼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는가. 이곳을 돌아보면 도처에 스승이 있다. 잘만 하면 이들을 거울삼아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내게 재미와 존경심을 주고 나아가 스승이라 여기도록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여기서 그 이름과 행적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지 모르니 그저 우리들의 이심전심의 언어로 그분들을 열거해 본다.

A 선생. 몇 년 전 정년을 맞이하셨다. 그럼에도 왕성한 학구열은 식을 줄 모른다. 항시 최신의 학문적 정보를 게시하고 자신의 업적을 보여주신다. 거기다가 겸손함이 몸에 배었다. 진리추구에 열심인 데다 인격까지 갖추었으니 후배로선 넘사벽이다. 존경을 표할 뿐이다.

B 선생. 아이들을 키우면서 전문가로서도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아이 키우는 것에도 박사요, 자신의 전문적 영역에서도 박사다. 그의 글을 읽자면 나는 헛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그 시절 무엇을 했을까? 나도 뭔가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그를 보니 시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C 선생. 누가 보든 말든 사람 사는 이치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다. 생활인으로 녹녹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배우고 때로 익히는 자세는 전문 학자와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내게 살아 있는 철학자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D 선생. 배우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분이다. 인생의 스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만나고, 한 수 배우길 청한다. 이제 그는 자신도 무언가 세상에 쓰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글을 쓰고 있다. 처음은 미약하지만 종국은 창대할 것이라 믿는다.

E 선생. 호연지기가 남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용기를 낸다. 가끔은 구설에 오르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불의한 세상에 맞선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F 선생. 세상을 보는 눈이 예리한 태생적 비판자다. 문제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조리 있게 설명한다. 성격이 강해 사람들로부터 분명 호불호가 있지만 게의치 않는다. 그가 진정 이 나라의 민주화 투사다.

G 선생. 상인은 약삭빨라 존경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법인데 이분을 보면 분명 예외가 있다. 시국을 보는 눈이 바르고 공정하다. 넓은 세상 이곳저곳을 다녀본 분이라 말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H 선생. 요즘 시대에 다둥이 엄마로 고생하고 있지만, 거칠 것 없이 세상을 사는 남다른 전문가다. 인권 감수성이 좋고 실천력이 남다르다. 이렇게까지 되기까지는 아마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보다 그의 낙천적 인생관이 좋다.

I 선생. 보기 드문 진취적인 법률가. 특히 우리 사법의 현실을 생각하면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대 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 자신의 길을 간다. 선배로서 바라기는 그가 지치지 말고 훌륭한 법률가로 대성하길 바랄 뿐.

J 선생. 학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분. 이분을 보면 내가 하는 공부가 과연 공부인지 자괴감이 든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학문에 긍지를 갖고, 이젠 선한 영향력을 주변으로 확대하고 있다.

K 선생. 인생을 스스로 어렵게 살아온 분.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단칼에 거부하는 사람. 그의 짧은 글에서 분투하는 삶을 본다. 그의 글은 읽는 사람들에게 죽비와 같을 것이다.

L 선생. 한마디로 촌철살인의 재주를 가진 분. 어려운 문제도 핵심을 잘 짚고 특유의 유모어로 사람들을 웃긴다. 답답한 세상에서 이렇게 경쾌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아마 본인은 모를지 모른다.

M 선생. 참 꾸준한 분. 글을 쓰는 분은 아니지만 언제나 좋아요를 누르고 짧은 댓글로 글쓰는 이를 칭찬한다. 이런 분들이 있으니 페북이 황량하지 않다. 이런 분들이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이다.

N 선생. 리서치의 귀재.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관련 정보, 그것도 외국의 유사한 상황을 찾아내 제공한다. 자신의 탈렌트를 활용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실인지를 꾸준히 알려준다. 이 공간의 보배다.

O 선생.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분. 짧은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그의 투박한 듯한 감성에서 어떤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여전히 무명이지만 스타는 스타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써 놓고 보니 내가 있을 이유로는 충분한 것 같다. 남들이 보면 나에게도 무언가 있어 그것이 그들을 붙잡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하늘이 준 나의 탈렌트라 생각한다. 나도 그 탈렌트를 살려보자. 그리하여 누군가 이 같은 글을 쓸 때 한 자리를 차지해 보자.(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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