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법률가의 최소한의 양심, 사법농단에 분노해야-

박찬운 교수 2018. 12. 24. 11:01

-법률가의 최소한의 양심, 사법농단에 분노해야-


2018년 6월 사법농단 사태 규탄대회, 서초동변호사회관 앞


나는 능력도 딸리고 실수도 적잖게 한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훈계조의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2018년을 보내면서 한 부류의 사람들에겐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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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오랫동안 법률가라는 직업을 갖고 그것을 통해 먹고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다. 그 직업은 내겐 자랑이었고 긍지였다. 내가 누구보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강하다면 그것은 그 직업과 관련이 있다. 그런 내가 사람들에게 낯을 들 수 없다, 법률가란 직업 때문이다. 그런 내가 자괴감이 든다, 법률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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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는 그 사건 자체의 심각성 이상으로 이 사회에서 법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케 하는 문제다. 도대체 법률가란 무엇인가? 법률가는 무엇을 위해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인가? 법률가는 자고로 뭔가를 생산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생산자에 기생하는 집단이다. 기생이 항구성을 갖기 위해선 숙주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생집단은 기생충집단이 되어 언젠가 구충제에 의해 제거될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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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사법농단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법률가들이 많다. 헌법 파괴적 행위로 국가와 정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하는데도 분노는커녕 관심조차 표명하지 않는다. 전국의 변호사와 판검사, 그리고 법학 교수들은 어디로 갔는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분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론 상당수의 법률가들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지만 그 소리는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침묵의 벽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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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대로 살라고 도덕책 한 줄을 소리 높여 읽는 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너도 그렇게 살라고 꼰대스런 말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대법원이란 최고법원에서 대법관과 고위법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바람을 뭉개버리고 재판을 개판으로 만들었는데도 그 관련자를 처벌할 수도, 탄핵할 수도 없는 현실...이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문제를 이렇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법률가들이 침묵을 깨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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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분명 있다. 적어도 내 법률가 사전엔 사법농단에 분노하지 않고 침묵하는 사람을 법률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모든 법률가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사법농단을 규탄하고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법률가를 먹여 살리는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다.(2018.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