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논란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9. 4. 5. 14:11

(고성, 속초 지역에 산불이 났습니다. 조속히 진화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1. 정부가 수사단계의 국선변호제도인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위해 입법예고를 하자 변호사계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반대 내용을 보면 확연히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쪽은 이 제도 자체가 필요 없다며 결사반대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제도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운영주체를 변호사단체(대한변협)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초부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 온 사람으로서 이 논란에 대해 간단히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2. 우선 형사공공변호인제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수사초기의 인권보장을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형사절차에서 인권침해(고문, 강압적 심문, 회유 등등)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단계가 수사단계이다. 그 중에서도 피의자가 체포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수사초동 단계가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무엇일까? 조사과정에 변호인이 참여(입회)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수사관이 피의자를 고문하겠는가!

 

이것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은 바로 이 과정에 처한 피의자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은 미국의 미란다 절차에서 온 것으로, 피의자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나는 변호사 없이는 조사받을 수 없다”(변호사가 올 때까진 묵비권 행사)고 말하면, 바로 인근의 ’퍼블릭 디펜더‘라는 변호사가 달려오는 제도와 같은 것이다. 이런 제도를 우리나라도 해보자는 것이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의 취지다.

 

3. 이 제도를 반대하는 변호사들은, 정부가 도입하려는 형사공공변호인은 살인피의자나 성폭력 범죄 피의자 등 중범죄 피의자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면서, 국민정서상 용인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제도의 취지를 곡해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런 주장이다. 형사절차에서 변호인의 필요성은 중범죄 용의자를 중심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억울한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법 격언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형사절차가 잘못되어 단 한 명이라도 중범죄로 확정되면,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을 막기 위해 현재는 공판단계에서 필요적 변호제도를 두고 있다. 중범죄 피고인을 재판하기 위해선 반드시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없으면 국선변호인이라도 지정해야 법정을 개정할 수 있다. 중범죄 피의자에 대해 형사공공변호인을 붙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치의 연장이다. 중범죄 피의자 (만일 절차가 잘못되어 범인으로 확정되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의 인권보호를 위해 공판단계 뿐만 아니라 수사단계까지도 변호인을 제공해 변호인이 없으면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4. 제도를 반대하는 변호사들은 형사공공변호인은 버닝 썬 사건의 가수 승리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면서 비난한다. 국선변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인데, 형사공공변호인은 그것과 관계없이 부자도 이용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대도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이 수사초기에서 필요한 제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체포해서 조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때 피의자의 경제력을 조사해서 그에 기해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를까 말까를 판단할 수 있을까? 시간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범죄 피의자를 조사할 때는 피의자의 경제력과는 관계없이 인근에 있는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르겠다는 것이다(물론 이후의 절차에선 피의자의 경제력을 판단해 계속 변호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운영을 해도 승리나 재벌회장들이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를 가능성은 없다. 그들에겐 언제든지 달려올 변호사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5. 형사공공변호인은 이미 인권 선진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제도다. 미국의 퍼블릭 디펜더, 영국의 듀티 솔리시터, 일본의 피의자 국선변호 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사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한참 늦었다.

 

6. 다만 이 제도를 누가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재 법무부는 그 산하의 법률구조공단에게 이 제도를 맡기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만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은 된다. 그러나 이런 제도 운영은, 대한변협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수사와 기소를 감독하는 법무부가 그 대척점에 있는 변호사의 형사변호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운영을 변협이 맡는 것도 무리라고 본다. 이 제도는 조직력을 갖춘 공적 조직이 맡지 않으면 실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미국, 영국, 일본 어느 나라에서도 변호사 단체가 직접 이 제도를 맡진 않는다). 나는 이에 대해 국선변호제도 전반을 손을 본 다음, 공판단계와 수사단계의 국선변호를 모두 담당하는 제3의 독립적 특수법인을 설치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변호사단체는 이 독립법인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족하다. 일본의 국선변호제도를 운영하는 사법지원센터가 하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이 제도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서는 변호사들의 형사변호 기회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사법지원센터에 계약을 맺고 형사변호를 하는 변호사 수가 전체 변호사의 60%에 달한다. 변호사계가 이 제도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상호 윈윈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도 입안에 참여하길 기대한다.(2019.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