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5 무모한 그 운전에 대해

박찬운 교수 2016. 8. 23. 12:12

영국이야기 5


무모한 그 운전에 대해



영국의 라운드어바웃, 이 도로에 적응하는 것이 영국운전의 관건이다.



제가 매우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저는 의외로 매우 즉흥적이고 허술한 사람입니다. 그저 될 대로 되겠지 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될 대로 주의자’ 이기도 합니다.


8월 10일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곳 학교에 출근하기로 한 시일도 보름 정도가 남아 있어서 그 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처음엔 기차표를 끊어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를 두루 다녀 볼까 생각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포기했습니다. 하나는 저와 집사람이 그렇게 여행하기에는 여행경비가 너무 드는 것이었습니다. 갑부가 아니잖습니까? 영국에선 교통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어느 분이 그러십니다. 그렇게 돌아다녔다면 아마 수천 파운드(수백만 원) 들었을 거라고요. 둘째는 짧은 시간 내에 영국을 경험하기에는 대중교통은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중교통은 기다리는 시간이 많고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쉽게 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남은 선택지는 차를 빌려 가는 것.


렌터카라? 저는 한국에서도 차를 제대로 운전하지 않은 게 10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긴요할 때가 아니면 운전을 하지 않았지요. 더군다나 저는 제주도를 가더라도 렌터카를 빌린 적이 지난 30년 동안 거의 없습니다. 그런 내가 차를 빌린다? 더욱 난제는 이곳이 좌측 통행이라는 것입니다. 도로에서 길을 건널 때 본능적으로 고개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지요. 얼마나 사고가 많이 나면 런던 시내 건널목마다 보행자를 위해 노면에 주시방향을 써 놓고 있겠습니까(Look right! Look left!). 그런데 이런 곳에서 차를 몰아?


하지만 마냥 런던 시내에서 놀 수도 없고... 어느 순간 인터넷을 헤매다가 순간적으로 차를 찾아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빼도 박지 못하고 자동차로 영국을 일주한다! 과연 그게 잘 될런지...


런던에 온지 사흘 째 되는 날 아침 일찍 히드로 공항으로 가 차를 받았습니다. 스코다라는 차인데, 차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는 순간 더럭 겁이 나더군요. 도무지 감이 없었습니다. 좌우가 자꾸 헷갈리고, 차량기능을 익힐 여유도 없이 차를 몰기 시작했기에 더욱 겁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모든 것은 네비와 하늘에 맡기자, 내 명은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정해져 있겠지 하면서 시동을 걸었습니다. 차량 인도장소에서 두어 바퀴 돌고 나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어렵더군요. 뒤차가 빨리 나가라는 통에 그것도 못하고 주차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영국 운전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좌우를 잘 구별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운드 어바웃에서 다음 행선지로 잘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후자가 문제인데, 이곳엔 교차로에 신호기가 거의 없고, 원형으로 돌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이게 쉬운 것 같아도 처음 운전하는 사람으로선 죽을 일입니다.


렌터카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라운드 어바웃이 있는데, 네비보랴 도로상황 보랴, 잠시 당황한 순간, 차가 도로변 경계선을 충격하고 말았습니다. 운전한지 단 몇 초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옵니다.


그래도 차는 앞으로 나가더군요. 그 때부터는 차가 도로에서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운전석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앙선이 우리처럼 노란색으로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흰색 점선이나 실선의 중앙선을 가급적 침범하지 않으려고 차를 모니 차가 점점 왼쪽으로 치우쳐져 도로 경계석을 부딪치며 가는 겁니다.


히드로 공항을 빨리 빠져 나와 고속도로를 진입하고 싶었지만, 두세 번 라운드 어바웃에서 헤매다 보니 차는 영 딴 곳으로 가는 겁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순간적으로 애들 생각이 나면서, 객지에 나와서 비명횡사한다는 게 이런 이런 것이구나, 내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후회막급!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어찌어찌해서 고속도로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고속도로 제한 속도가 70마일입니다. 우리보다 조금 빠른 편이지요. 보통 3차선 도로인데, 저속 주행을 할 때는 1차선으로 달리다가 추월을 할 때는 2차선이나 1차선을 이용합니다. 고속도로는 비교적 빨리 적응이 되더군요. 그저 잘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어느 정도 운전에 감을 잡았습니다.


운전한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첫 방문지인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스트라트포드 어펀 에이븐이란 곳에 도착했습니다. 워낙 차량이 붐비는 곳이라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고 가급적 도심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초입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첫 번째 주차였던 것이지요. 시간당 1파운드의 동전을 넣고 티켓을 뽑아 차량 앞에 놓아두는 방법인데, 호주머니에 있는 돈이 딸랑 1파운드, 적어도 3시간 정도는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시내 한 가운데에 가서 동전을 바꿔 다시 와서 티켓을 올려 놓는 촌극을 벌렸습니다.


이렇게 무모한 운전을 감행하고서도 첫날 숙소까진 무사히 갔습니다. 하느님, 조상님에게 감사!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은 이제 조금 익숙해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출발을 했는데, 출발과 동시에 그 때까지 해보지 않은 우회전(한국에서라면 좌회전)을 하게 된 것이지요. 주행차선을 가로질러 반대차선으로 들어서는 상황인데... 들어선게 아뿔사 주행차선! 그러니까 역주행 상황이 되어 버린 겁니다. 들어서서 몇 십 미터를 갔을까?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달려오는 것 아닙니까? 혼비백산! 달려오던 차가 갑자기 서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저는 황급히 후진해서 반대차선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런 식으로 운전을 하면서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렵던 라운드 어바웃도 3일, 4일이 되면서 몸에 익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 가서는 도시 한 가운데까지 들어가게 되더군요.


8박9일간 약 2천 킬로미터의 주행을 하고 히드로 공항에 차량을 반납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 있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페친 여러분께 런던에 오면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하시라, 이렇게 제가 권할 수 있을까요? 음... 그렇게 쉽게 권하긴 어렵습니다. 만일 운전을 하길 원한다면, 한 열 시간 정도 연수를 받으십시오. 찾아보진 않았지만,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 연수 프로그램이.


그나저나 저는 이제 한 가지 재산이 생겼습니다. 영국 어느 곳도 저는 이제 차를 몰고 갈 자신이 있습니다. 이건 보이지 않는 재산입니다. 암요, 재산이고 말고요. 참고로 이렇게 9일 동안 2천 킬로미터를 몰았던 렌터카 비용 및 유류대는 총 70만원! 이 정도면 알뜰한 여행이었지요?


(2016.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