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4 마그나 카르타를 친견하다

박찬운 교수 2016. 8. 23. 12:09

영국이야기 4


마그나 카르타를 친견하다




한국을 떠나면서 영국에 가면 꼭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이 문서를 친견하고 싶었다.


대헌장은 1215년 영국의 존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의해 마지못해 만들어졌지만 세계인권사에서 이만큼 중요한 문서는 찾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 인권 관련 책들이 마그나 카르타를 기점으로 인권을 설명하니 말이다.


13세기 초 잉글랜드 왕 존은 프랑스에서 전쟁을 벌리면서 그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세금을 물렸고, 사람(자유민)들을 멋대로 구금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이에 귀족들이 들고 일어났다. 존왕은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서 귀족들이 요구하는 권리를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문서화했다. 그것이 바로 마그나 카르타의 탄생이다.


마그나 카르타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말한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국왕은 자유민에 대해 의회(당시는 아직 지금과 같은 의회가 성립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귀족들의 의사라고 할 수 있음)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부과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법률과 합법적인 재판을 받지 않고서는 자유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대적으로 말한다면 그게 바로 민주주의요, 법치주의다.


이 두 가지는 그 뒤 17세기 혁명의 시기에 권리청원(1628)과 인신보호영장(1679) 그리고 권리장전(1689)을 통해 영국의 헌법질서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더욱 이러한 이 제도와 정신은 프랑스 혁명 이후 만들어진 프랑스인권선언과 2차 대전 이후 유엔이 만든 세계인권선언에 반영되었고, 국제사회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 기본권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니 대헌장은 모든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아버지다.


인권법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런 의미 있는 문서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하나의 성스런 의무다. 나는 그 친견을 통해 느낀 내 감동을 학생들과 인권에 관심 있는 친구에게 전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여행을 위해 사용한 렌터카를 반납하는 날. 나는 차를 반납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볼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9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솔즈베리 성당. 그곳에 마그나 카르타가 봉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가 탄생하면서 이 문서의 원본이 몇 개를 만들어졌던 모양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13개. 그 중에서 지금 4개가 원본으로 인정되어 보관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다.


솔즈베리 대성당은 듣던 대로 황홀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솔즈베리에 들어서자 도시 한 가운데에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보였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고딕식 성당이다. 마침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태양이 드러나자 성당 전체가 빛을 뿜었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여기 사진(첫 댓글)은 그 중 하나다.


마침내 성당 내 한 방으로 달려갔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사면 창을 휘황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멋진 방이다. 마그나 카르타는 그 방 작은 장막 속에 놓여 져 있었다. 웬만하면 적당히 몰래 카메라를 작동해 한 장 찍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이 들었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문서야 말로 인류의 보고가 아닌가. 이렇게 까지 철저하게 보관하고 있는 영국인들의 그 정성에 내가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포기했다. 대신 장막 속에서 원본 마그나 카르타를 눈여겨보았다. 중세시대의 라틴어라 한 글자도 읽기 힘들었지만 나는 그 모든 글자를 내 눈에 새겨 넣었다.


마그나 카르타를 친견하고 나서도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감동을 어떻게 한국의 친구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순간 나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휴대폰을 꺼내 즉석 멘트로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한국의 친구들에게 과연 나의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2016.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