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2 . 에딘버러에서의 의문

박찬운 교수 2016. 8. 23. 04:36

영국이야기 2


에딘버러에서의 의문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글을 쓸 여건이 안 된다. 숙소에 책상이 없으니 컴퓨터를 놓고 자판을 칠 수가 없다. ㅠ ㅠ 그래도 글을 쓰고 싶은 생각에 침대에 반쯤 누워 컴퓨터를 펴고 자판을 두드린다.


에딘버러 성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를 들렀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중세의 고성이 도시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도시다. 성에 올라보니 한쪽으론 성과 함께 생사고락을 해온 올드 타운이, 또 한쪽으론, 17세기 이 도시가 확장되면서 생겨난 뉴타운이 눈에 들어온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될 만큼 건물들은 고생창연하다. 수백 년의 연륜은 검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건물 외벽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에딘버러 대학


나는 오늘 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 그저 이 도시의 한 가운데를 하루 종일 걸으면서 생겨난 하나의 의문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 연륜 깊은 도시 한 가운데에 한 대학이 있다. 에딘버러대학.

1582년 설립된 이 대학은 긴 역사와 함께 그 배출된 인물에서 옥스퍼드, 케임브릿지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손색이 없다. 이 대학을 나온 사람 중에서 한국 사람도 알 수 있는 사람 몇 사람만 대면 아 그 대학! 이라고 말하리라. 근대 철학의 거성 데이비드 흄,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 셜록홈즈를 지은 코난 도일,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얼마 전까지 영국 수상을 지낸 고든 브라운 등이 이 대학출신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도 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꽤 있다. 법학분야에서도 일찍이 국제해양법재판소를 지냈던 고 박춘호 교수도 이곳을 나왔고, 최근엔 나와 가까운 후배도 이곳 대학을 나와 한국의 모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이 유수한 대학에 유학 오는 일이 크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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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쯤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1920년 초에 윤보선이 이곳에 왔다. 4.19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섰을 때 대통령이 된 사람 말이다. 그가 이 대학을 나왔다. 그것도 정치학이나 사회과학도 아닌 인문학 중의 인문학인 고고학을 공부했다. 일제 강점기에 영국 유학이란 것을 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런던이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게 내겐 왠지 의문으로 다가온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 머나먼 대학으로 와서 당시로선 생소하기 그지없는 고고학을 공부하려고 했을까? 윤보선이 장안의 명문가인 것은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는 서울북촌의 그의 집만 보더라도 그의 집안이 조선 땅에서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었는지는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 그의 선대는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냈으며, 그의 아버지는 충청도 최고의 갑부였다. 5촌 당숙은 개화파의 일원이었던 윤치호다.


그런 가문의 일원이라고 해도 그가 상해 임정을 거쳐 해외유학을 결행하면서 당시 조선인 사이에선 알려지지 않은 에딘버러를 택한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왜 이곳에 왔을까? 런던에서 이곳까진 7백 킬로미터. 그가 대학을 다녔을 1920년 초 런던에서 이곳을 오기 위해선 자동차 2, 3일은 족히 걸렸을 곳인데... 그는 왜 이 머나만 곳에 위치한 대학을 선택했을까?

옥스퍼드나 켐브릿지는 성적이 안 돼 들어가기 힘들었다고 해도, 런던에는 유명대학이 다수 있었는데, 어찌해서 이 먼 에딘버러를 택했을까? 상상하기 힘들다. 그것도 조선사람 대부분에겐 개념조차 알려지지 않은 학문 고고학을 그 엄중한 시기에, 독립운동한다는 사람이 공부한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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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이 유서 깊은 도시에서 그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에딘버러 대학은 도시 한 가운데를 걸어다녔을테니, 그도 고개만 들면 바라다 보이는 에딘버러 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 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대학을 거쳐 간 인류사의 빛나는 별들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을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고 진화론을 이해하였을까? 당시 생존해 있으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읽어보았을까? 근대 경험철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 데이비드 흄의 철학을 이해하였을까?


나는 에딘버러 한 가운데에서 윤보선을 계속 생각했다.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졌지만 내 의문에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나 건진 것은 또 다른 인물, 장택상. 해방이 되고 미 군정 시절 수도경찰청장을 지내고 자유당 정권에선 국무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그 장택상 말이다. 그도 윤보선과 같은 시기에 이 에딘버러 대학을 다녔다는 것이다. 시기상 이 둘은 이곳에서 만나 같이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곳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언젠가 자료를 찾아보아야겠다. 어떻게 해서 이 둘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했는지... 이곳에 와서 이들이 도대체 무슨 공부를 했는지...


(2016.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