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충격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찬운 교수 2018. 1. 25. 09:35

충격적인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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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히 충격적이다. 블랙리스트 추가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읽어 본 소감이다. 예상했던 수준보다 몇 배 심각한 내용이다. 법원행정처가 문제 법관들의 리스트를 작성한 정도로 생각했는데, 조사결과는 그것을 뛰어넘어, 행정처가 법원 내 명실상부한 사찰기구였음이 드러났다. 꿩 잡으러 갔다가 매를 잡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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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히 충격적이다. 법원행정처에서 소위 잘 나가는 판사들이 작성한 사찰보고서의 세밀함과 그 분석력에 놀랐다! 이들은 출중한 능력으로 최고의 사찰보고서 만드는 데 시간과 정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전문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모름지기 사찰보고서를 만드는 데에도 행정처 판사들 간에 경쟁이 작용한 모양이다. 판사의 능력을 이런 데에 쓰다니 정말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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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히 충격적이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자율적인 조직인 판사회의 의장 선거에 문제 판사가 당선되지 않도록 대항마를 세우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사법행정위원회 개선을 요구하는 판사들에 대해서는 핵심그룹과 주변그룹으로 나누어 성향을 조사해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문제 판사라고 지목된 판사들(차00, 송00)에 대해서는 그의 활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대응전략을 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특정사건(원세훈 사건)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판결 전후 긴밀하게 논의했고 그 의중을 반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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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히 충격적이다. 이번에 추가조사위원회는 행정처에 보관되어 있는 문제 컴퓨터 전체를 조사하지 못했다. 이 사건 핵심당사자인 임종헌 차장의 컴퓨터에는 접근조차 못했고, 700개가 넘는 파일은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열어보지 못했다. 더욱 수백 개의 파일은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정황으로 보면 훨씬 심각한 내용을 담은 자료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조사위는 거기까지 확인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만일 이들 자료까지 접근했다면 더 놀랄만한 내용까지 밝혀졌을지 모를 일이다. 도대체 법원행정처가 무슨 일을 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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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것은 범죄행위다. 이번에 추가조사위원회가 밝힌 것만으로도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행위는 사법행정권의 권한을 넘은 범죄행위가 분명하다. 전국 법원의 재판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에서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외부 권력기관과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부적절한 논의를 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행정처의 담당판사들에게 이런 일을 시킨 대법원장과 행정처장 그리고 차장을 비롯한 고위법관들에겐 직권남용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수백 개의 파일을 지운 관련자들에겐 증거인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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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사태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 법관들의 봇물 같은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법원 내부에서 판사들이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법관의 독립을 포기한 것이고, 최소한의 양심도 져버리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사법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런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좌고우면하는 것은 우리 사법부가 두 번 죽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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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덧. 어제 13명의 대법관들이 원세훈 판결과 관련해, 관여 대법관들은 이 사건에서 외부로부터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부적절한 해명이다. 당시 대법관 중 상당수가 이미 퇴직했으니 현 대법관 중 일부는 그 재판에 참여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대법관들이 이런 해명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선의로 받아들이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