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태국의 보석 치앙마이

태국의 보석 치앙마이(1)-조용히 치앙마이로 떠나다-

박찬운 교수 2025. 2. 6. 09:07

 조용히 치앙마이로 떠나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을 둘러싼 해자

 
2025년 2월 2일(일요일) 조용히 서울을 떠났다. 정국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안개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시국에 팔자 좋게 외국 여행한다고 말하기도 부담스러워 주변에도 알리지 않은채 떠났다. 내란 사태가 일어난 후 거의 두 달간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다보니 마음이 피폐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을 자도 중간에 자주 깨고 한번 깨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방학을 다 보내야 하다니...너무 억울했다.

치앙마이. 이곳을 한번 가고 싶었다. 요즘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관광 성지 중의 하나로 통하는 곳이다. 실로 인기가 엄청 나다. 지난 1월 한 달 사이에 무려 3만 5천 명이 다녀 갔다고 한다. 치앙마이를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 수에 국가별 순위는 이제 한국이 단연 1위가 되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었으니 유행 따라 사는 한국인의 취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과 관계없이 오래 전부터 치앙마이를 홀로 여행하기에 좋은 여행지로 찍어놓고 기회만 보고 있었다. 시국 때문에 올까말까 주저했을 뿐이다.

이곳은 나같이 한 동안 홀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더 없는 적지다. 방콕과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시골 같은 한적한 도시,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밀림의 대자연으로 나갈 수 있는 위치, 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불교사원과 세계 최고 수준의 카페, 거기에다 저렴한 물가.... 이 정도면 한번쯤 머물고 싶은 도시가 아닌가. 이래서 번잡한 한국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한달살기를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내가 머물었던 호텔에서 본 치앙마이 올드타운 바깥

 
나는 홀로 여행하고 싶었다. 홀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었다. 홀로 사원을 거닐며 사색하고 싶었다. 홀로 호텔 방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홀로 식당에 가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음미하고 싶었다. 한 열흘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 몸과 마음이 힐링이 돼, 다시 한국의 전쟁터로 돌아간다고 해도, 얼마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설 명절이 끝나는 2월 2일, 남들은 해외에서 돌아오는 날, 인천 공항에서 치앙마이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배낭에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12일간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머물면서 한가한 생활을 했다. 많은 곳을 바삐 돌아다니는 관광을 자제하고 슬로우 템포로 올드타운 여기저기를, 때론 교외로 나가, 오랜만에 조용한 일상을 보냈다. 그럼에도 내가 보고 느낀 것은 많다. 그냥 홀로 보고 잊기가 아까운 것이었다. 며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를 꺼내 조금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의 숙명적인 버릇이다. 이 버릇을 이번 여행에서는 예외로 하고 싶었지만 본능에 가까운 이 기록의 습성은 나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동문 타패 게이트 주변

 
이번 여행에서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 인공지능 AI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지에서 위키피디아를 요긴하게 사용했다. 특정 명소에 가서 위키피디아에 그 명소 이름을 넣으면 영문 설명이 나오는데 이것이 시중에 판매되는 여행 가이드북 보다 훨씬 자세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챗지피티 무료판을 이용했다. 이것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신기한 것이다. 마치 대화하듯 챗지피티에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질문하면 단 몇 초만에 만족할만한 답이 나온다. 만물박사 무불통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의 시대로 접어들어든 것이다. 탄성과 함께 무언가 섭섭함이 마음 속에서 올라왔다.

이제부터 내가 경험한 치앙마이를 이곳에 정리해 놓으려 한다. 치앙마이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명소 몇 군데, 내가 자주 다닌 카페,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정도가 그 내용이 될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 한다는 생각으로 치앙마이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 게 좋겠다. 어떤 여행도 그 지역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 정도는 알고 가는게 여행을 즐겁게 하는 방법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은 여행에서는 진리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내에 있는 왓 체디 루앙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다. 13세기 말 란나 왕국(1296-1558)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이래 태국의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과 비교를 한다면 경주 정도의 위상을 갖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도시 크기론 방콕에 이어 태국 제2의 도시다. 인구는 대체로 광역까지 포함하면 100만 가까이 되는 도시다. 태국은 방콕의 경우 광역을 포함하면 천만 명이 넘는 국제적인 거대 도시지만 그 외는 10만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렇게 볼 때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치앙마이는 태국어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란나 왕국의 시조 멩라이(King Mengrai)에 의해 건설되었다. 멩라이는 치앙마이 평원에 정사각형의 성곽과 해자에 의해 둘러싸인 계획 도시를 만들었다. 이 시기 태국은 불교가 흥성할 때라 도시 곳곳에는 사원이 만들어져 불교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란나 왕국은 250여 년간 번영을 누렸으나 16세기 중반에 이웃 나라 버마(따웅우 왕조)에 의해 침공을 받아 점령된다. 이후 약 200 여 년간(1558년~1774년)은 버마의 영향 아래 놓인는데, 이 시기 전쟁과 내전으로 도시는 급격히 쇠락한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내의 왓 프라싱

 
버마 세력은 18세기 후반 방콕을 기반으로 하는 시암 왕국의 공격을 받는다. 당시 시암의 탁신 왕은 치앙마이를 점령해 200년간의 버마 통치를 종식시키고 시암 왕국의 일부로 만든다. 그러나 치앙마이는 시암 왕국으로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며 자치권을 누린다. 치앙마이가 완전히 태국화하는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시암 정부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1939년, 태국 정부는 치앙마이를 정식으로 태국의 일부로 통합하였다.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는 태국 북부의 경제, 교육,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치앙마이의 최대 산업은 관광 산업으로 태국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을 걷다보면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이곳은 태국 관광의 성지 중 한 곳이다. 태국 북부의 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