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문화의 도시로
치앙마이에서 2주나 있으면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치앙라이. 치앙마이에서 북쪽으로 약 200킬로 떨어진 곳이다. 그 정도면 한국 같으면 가는 게 큰 일이 아니겠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태국에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개인적으로 가기엔 무리하다는 판단 아래 관광 회사의 1일 여행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나처럼 1일 여행으로 치앙라이를 다녀오고자 하는 여행객이 많은지 치앙라이 1일 여행 프로그램은 수없이 많다. 그중 하나를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아침엔 호텔까지 와서 픽업하고 여행이 끝나면 호텔까지 데려다 준단다. 거기에다 점심까지 주는데도 5만원이 조금 넘을까 말까 하니 싸긴 싸다.
이 프로그램은 치앙라이에 가면서 목을 길게 만드는 풍습을 가지고 사는 카렌족 민속촌을 방문한 다음, 치앙라이로 들어가 그곳에서 현재 여행객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세 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화이트 템플, 블랙 하우스, 블루 템플. 아침 7시에 떠나서 밤 8시에 돌아왔으니 총 13시간이 걸린 강행군이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치앙마이에 와서 치앙라이를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치앙라이가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란나 왕국의 개국과 관련이 있다. 원래 란나의 개국 시조 맹라이(Mengrai)는 왕국의 수도를 치앙라이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치앙라이의 이름를 알리기도 전에 수도를 남쪽으로 이전하는 결단을 내린다. 현재의 치앙마이를 왕국의 수도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치앙라이에는 치앙마이 같은 역사적 유적지는 적은 듯 하다. 치앙라이는 16세기 버마의 침공을 받아 약 200 여년 간 버마 통치를 받았고, 18세기 말 시암(방콕) 왕국이 버마 세력을 내쫓고 이곳을 그 통치 하에 둠으로써, 결국 20세기 태국의 한 주가 되었다.
치앙라이가 현대에 들어와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유는 아편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이곳이 아편의 생산과 거래로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의 거점이다. 이곳은 태국의 최북방으로 북쪽으론 중국, 서쪽으론 미얀마, 동쪽으론 라오스 국경이 가깝다. 그렇다 보니 과거 중국의 국공 내전의 국민당 잔당이나 미얀마나 라오스의 반군들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아편을 생산해 국제적인 마약의 생산지로 떠올랐던 것이다.
1990년대 초까지 이 지역은 마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태국 정부는 과감한 마약 소탕 작전과 작목 변경(커피) 정책을 추진해 성공시키고 대신 이 지역을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치앙마이를 여행하는 이들이 이곳을 가려는 이유이고, 태국 북부 지역의 커피 산업의 발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호텔을 떠나 차에 몸을 실었다. 산악지방이라 내내 보이는 것은 산과 숲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둘러본 세 곳을 통해 이 지역이 얼마나 빨리 변모하는지를 실감했다. 이곳에 펼쳐진 태국인들의 노력은 대단했다.
1. 화이트 템플 (Wat Rong Khun, 왓 롱쿤)
화이트 템플은 치앙라이에 위치한 불교 사원으로, 일반적인 사원과 달리 순백의 색상을 토대로 한 현대적인 예술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건축물이 특징이다. 태국의 예술가 찰름차이가1997년 시작해 아직도 계속 건축 중인 사원이다.
사원의 주요 색상은 흰색인데, 이는 순수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사원 표면에는 빛을 반사하는 거울 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볼만한 것은 지옥에서 극락으로 올라가는 다리, 다리에서 연결되는 법당 그리고 화려한 황금 화장실이다.
2. 블루 템플 ( Blue Temple, Wat Rong Suea Ten, 왓 롱쑤언텐)
블루 템플은 푸른색을 주된 테마로 한 사원이다. 위에서 본 화이트 템플을 설계한 찰름차이의 제자 파뎃 카오마니가 설계한 곳으로, 방치된 전통 사원을 현대적 예술감각의 완전 새로운 건축물로 변모시킨 곳이다. 2016년 완공.
사원의 주요 색상은 선명한 푸른색과 황금색인데, 푸른색은 지혜와 깨달음을, 황금색은 불교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볼만한 것은 법당 내부의 거대한 백색 불상, 거기에다 법당 바깥에는 청색과 황금빛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어 마치 신비의 왕국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3. 블랙 하우스 (Black House, 태국어로 반담)
블랙 하우스는 치앙라이에 위치한 독특한 예술 공간이자 박물관이다. 태국의 국보급 예술가 타완 두찬티(Tawan Duchanee, 1939-2014)가 설계한 이곳은 전통적인 태국 건축 양식과 어두운 분위기의 예술 작품들이 결합된 독창적인 공간으로, 흔히 ‘죽음과 어둠의 미학’을 상징한다고 평가받는다.
이곳 뮤지엄은 란나 왕국의 사원 양식을 기반으로 한 목조의 건축물로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외관과 내부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관 건물 이외에도 40개 이상의 다양한 건물이 넓은 부지에 흩어져 있다.
건물 내의 작품을 보면 동물 해골, 가죽, 뼈, 뿔 등을 활용한 작품들이 많다. 불교적 요소에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화시키고 있는데, 불교 철학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이곳을 한바퀴 돌면 이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이곳이 바로 현대 태국 예술의 절정이자 자존심이구나."
2014년 타계했다고 하는 타완 두찬티라는 태국 예술가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진짜 어딜 가도 천재는 빛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이번 여행에서 태국의 문화적 깊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소득 중의 소득이다. (제5회 최종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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