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84조 논쟁
-대통령 당선 전 형사 기소를 당하면 당선이 되더라도 유죄판결을 받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가-
잠잠해진 듯하지만 불원간 헌법 제84조 논쟁이 불붙을 것 같다. 특정인이 대권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기소가 되어 재판 중이니 대통령이 된 다음이라도 재판을 피할 수 없고 만일 유죄로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84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저 규정이 정한 특권은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형사상 특권을 정한 것이므로 언뜻 문언만 보면 재직 전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선 특권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도 같다. 그러나 저 규정을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저 규정이 뜻하는 바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엔 국가 반역죄를 범하지 않는 한 어떤 경우라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1. 세계적으로 보면 대통령의 재임 중 형사적 면제(criminal immunity)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헌법정책이 있다. 하나는 기능적 면제(functual immunity)로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직무에 관한 행위’에 대해서 형사적 소추 면제특권을 주는 경우다. 직무에 관한 행위에 대해서만 소추를 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직무 외의 사적 행위로 인한 범죄(타인에 대한 폭행, 사기 또는 그 이상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소추가 가능하다.
또 하나는 인적 면제(personal immunity)로 ‘재임 기간 중 직무에 관한 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기해 형사적 소추 면제특권을 주는 경우다. 직무에 관한 행위가 아니더라도 소추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대통령의 직무 외의 사적 행위에 대해서도 재직 기간 중에는 소추를 할 수 없다. 이같이 볼 때 우리나라의 헌법정책은 후자 즉 인적 면제에 해당한다.
2. 인적 면제의 내용에는 직무 행위에 대한 민사적 책임면제도 문제되나 우리나라 헌법에는 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 즉 대통령의 직무상 행위를 이유로 민사적 책임을 구하는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상 면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이러한 때에도 임기 중이든 후이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헌법에 규정하거나 판례로 확인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미국 연방대법원은 Nixon v. Fitzgerald (1982) 사건에서 대통령은 임기 중이든 임기 후이든 직무상 행위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완전 면책됨을 판시한 바 있다.
3. 대통령에 대한 임기 중 면제특권은 역사적으론 군주의 면책특권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되나 현대에 와서는 권력분립 원칙이나 민주주의 원리로서 설명된다.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비선출직 국가기관인 사법부가 그 직무를 사실상 또는 법률상 정지시키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 혹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이 규정(제헌헌법 제67조)의 의미에 대해 그의 헌법 교과서(신고 헌법해의)에서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본조는 대통령의 형사상 특전을 규정하였는데,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또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최고의 지위에 있으므로 군주국가의 군주와 같은 신성불가침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의 재직 중에는 특히 그를 형사상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때 이외에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할 것을 규정한 것이다.”(210-211쪽)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때에는 재직 중이라도 소추를 받는 것이며, 그 이외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우선 그를 탄핵에 의하여 파면하고 그 후에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있는 것이다.”(211쪽)
4. 헌법 제84조의 방점은 ‘재임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인바, 이는 재임 중에는 어떠한 경우라도(예외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경우) 대통령을 사법부의 심판대에 서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서 소추란 소송추행의 줄임말로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5. 따라서 ‘재임 기간 중 소추를 할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임기 중 대통령이 범한 범죄에 대한 소추 불가(공소제기 및 공소유지 불가)는 물론, 임기 개시 전에 수사가 진행된 사건의 임기 중 공소제기 불가, 나아가 임기 개시 전 공소제기가 된 사건의 임기 중 공소유지 불가, 이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 경우, 검찰이 유력한 대권 후보에 대해 대선 전에 수사를 하거나 공소제기를 해놓기만 하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언제든지 그 직무를 불능에 빠트릴 수 있어 최고 헌법기관인 대통령에 대한 면책특권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부당하다.
6. 대통령의 형사상 면책 규정으로 말미암아 임기 전 또는 임기 중에 범한 범죄에 대해서는 소추를 할 수 없고, 임기 개시 전에 소추된 사건은 공판이 정지될 수밖에 없다. 이런 범죄는 대통령의 임기 종료 후 또는 파면 등에 의해 퇴직한 후에 소추절차가 개시 또는 재개된다.
7. 우리 헌법 제84조의 해석론은 위와 같음에도 불필요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재임 중 소추할 수 없다‘는 규정이 위 의미를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헌법 개정 시에 이 규정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하든가 적어도 하위 법률로 그 의미를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8.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면책권에 관한 헌법 논쟁이 최근 일어났고, 그 결과 해당 규정의 헌법 개정(2007년)이 있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개정된 헌법 규정 중 형사 면책권과 관련된 규정이 제67조인 바, 우리 헌법 해석과 향후 제도적 개선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그 규정(영문본)을 옮겨본다.
Article 67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shall incur no liability by reason of acts carried out in his official capacity, subject to the provisions of Articles 53-2 and 68 hereof. (대통령은 이 법 제53조의2 및 제68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직무상 행한 행위로 인하여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아니한다.)
Throughout his term of office the President shall not be required to testify before any French Court of law or Administrative authority and shall not be the object of any civil proceedings, nor of any preferring of charges, prosecution or investigatory measures. All limitation periods shall be suspended for the duration of said term of office. (대통령은 임기 동안 프랑스 법원이나 행정 당국 앞에서 증언할 의무가 없으며,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고소, 기소 또는 수사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제한 기간은 해당 임기 기간 동안 정지된다.)
All actions and proceedings thus stayed may be reactivated or brought against the President one month after the end of his term of office. (이렇게 정지된 모든 소송과 절차는 대통령 임기 종료 후 1개월이 지나면 다시 재개되거나 대통령에 대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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