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25

승우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승우가 그린 승우가 그린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친구의 엄마, 아빠로부터 몇 마디 들은 게 전부다. 그 아이 이름은 승우. 서울의 어느 특수학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부모님 이야기로는 자폐아라고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지만 사실 매일같이 만난다. 오늘도 방금 전 점심을 먹고 그 아이를 만나고 왔다. 그의 엄마가 만들어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말이다. 나는 점심 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산책 겸 내 연구실에서 2킬로미터 쯤 떨어진 뚝섬역 근처로 걸어간다. 내가 발견한 몇 곳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요즘은 어느 가정식 백반 집엘 자주 간다. 단돈 오천 원에 집에서 보다 더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집!) 늘 상 가는 카페에 들어간다. 승우의 과 내 책 바로 승우 부..

거인과의 만남, 거인의 이별

거인과의 만남, 거인의 이별 사진 설명: 겐셔 외상 왼쪽으로 최영애(인권위 상임위원), 서보혁(인권위 북한인권 담당자), 오른쪽으로 김만흠(인권위 비상임위원), 내 옆의 인물은 기억나지 않으나 당시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 담당자였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전 독일 외상 한스 디트리히 겐셔. 89세. 그는 독일 자유민주당(FDF) 사람이지만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정부에서 각료로 출발해 슈미트 수상과 헬무트 콜 수상 정부에서 외상(부총리 겸직)으로 일했다. 그 기간이 자그만치 18년. 독일 현대 정치사에서 아마도 최장수 외상이었을 것이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브란트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집행한 이는 겐셔였다. 그는 헬무트 콜과 함께 통독의 주역으로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아침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K변호사를 만났다. 지하철역에서 천천히 고갯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척 무거워 보였다. 중절모를 썼지만 흰 머리카락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죠?”“어이구! 이게 누구여, 박변호사, 아니 박교수 아닌가. 이게 얼마만이지. 한 십여 년 된 것 같지.”“예, 제가 이곳을 떠나 학교로 간 지 대충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이곳엔 어인 일이십니까?”“아, 이 사람아. 나 아직 변호사야. 재판하러 오는 길이야. 집이 좀 멀어. 아침 일찍 지하철 타고 오는 게 쉽지 않군.” K변호사. 나보다 20년 연상이니 올해 70대 중반의 노인이다. 꼭 20년 전 내가 젊은 변호사로 변호사회에서 열심히 일할 때 ..

변호사의 두 가지 문제

변호사의 두 가지 문제 내 페친 중 상당수가 변호사들일 것이다. 이 분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은 그에 관해 한 마디 하자. 제대로 변호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는 항상 두 가지를 고민한다. 하나는 사무실 유지다. 요즘은 돈을 많이 받는 고용변호사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도 많은 수는 기본적으로 사무실을 유지 운영해야 하는 개업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기업의 경영자나 다름 없다. 때문에 다른 사업 경영인처럼 적절한 비즈니스를 해서 수입을 얻어 그것으로 직원들 월급, 건물 임대료, 세금 등을 내야 한다. 변호사의 순수입은 그 나머지다. 그런데 이런 사무실 운영이 해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옛날 변호사들은 그저 사무실에서 의뢰인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변호사 수가 적으니 사건 수임에는 큰 어..

만년필과 잉크에 담긴 추억

만년필과 잉크에 담긴 추억 내 책상 속에는 귀한 만년필 한 자루가 있다. 가격도 꽤 나가겠지만 내겐 추억이 가득 담긴 만년필이다. 나는 그것을 특별한 경우에 사용한다. 내 저서를 누구에게 선물할 때, 마음먹고 손 편지를 쓸 때... 이 만년필에 사용하는 잉크 또한 특별하다. 자그만 치 17년이나 된 잉크다. 살 때도 수퍼 블랙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농도는 더욱 더 진해졌다. 수퍼 수퍼 수퍼 ... 블랙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아주 옛날이야기다. 내가 사법시험 수험생활을 한참 할 때이니 33-4년 전의 일이다. 그 때 내 주변에는 A라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선후배 누구로부터도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그 선배와 같이 공부하고 함께 잠을 잤다. 그 선배의 영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