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32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 엊저녁 매우 유니크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덴마크 여자가 결혼하는 행사였습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결혼 파티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신랑 신부가 가까운 친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인연을 맺기에 이미 사회적으론 상당히 알려진 분들입니다. .서로를 안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정식 결혼(법률혼)을 결정했답니다. 아마 오래 동안 어제의 결정을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가진 모양입니다. 한 사람은 런던에서,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무대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지라,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키워 왔을 겁니다. .어제 저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 한 가지는 결혼신고와 관련된 에피소드..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대통령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대통령 . 우리 사회엔 어딜 가도 위계질서 문화가 강력하다. 내가 속한 법조계는 그게 유난히 강하다. 소위 기수문화가 횡행하는데, 법조경력의 길고 짧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처신하면, 큰 코 다친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다 관존민비 현상까지 더해져 현직에 있는 법조인들의 권위주의는 도가 지나친다. 재야 변호사들은 기수가 높더라도 현직 후배에게 깍듯하다. 이 같은 현상은 관이라고 할 수 없는 변호사단체에서도 나타난다. 변호사회 회장이 되면 기수와 관계없이 회원들과의 관계에선 갑을관계로 변한다. .언젠가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 ㅇㅇ변호사회 회장실입니다. 회장님이 박교수님과 통화를 원하십니다."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화가 났다. 어라..

기억 그리고 기록에 대하여

기억 그리고 기록에 대하여 이른 아침이다.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맡 서가를 둘러보다가 책 한권이 눈에 뜨였다. (2001).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01년 일본 변호사회와 교류를 마치고 만든 보고서로 내가 만든 책이다. 나는 당시 서울변호사회의 섭외이사(국제이사)로 일하면서 국제교류를 담당했다. 그 해 가을 우리 서울회의 임원들은 일본 변호사회와의 정기교류 차 토쿄와 오사카를 방문했다. 264쪽의 보고서는 바로 그 교류회에 관한 기록이다. 잠시 쭉 훑어보니 당시 상황이 어젯일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지금도 이런 보고서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16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교류가 많은 지금 이런 식의 보고서를 매번 만든다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때도 쉽지 않았다..

동기생들이여, 30년이 지났다

동기생들이여, 30년이 지났다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동기생들과 설악산에서(1986년 겨울) 오늘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임기 마지막에 대한민국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건의 재판장이 되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국민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결정문을 낭독하는 떨리는 음성은 많은 사람들 뇌리에서 오래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헤어 롤의 해프닝은 커리어 우먼에겐 오히려 자긍심을 주기에 알맞았다! 그와 나는 1987년 사법연수원을 함께 수료했다. 우린 동기생이다. 젊은 시절 2년간 같은 공간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 주변을 돌아보니 동기생 중엔 이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어쩜 지금이 그런 ..

그 때 그 여름에 대한 기억

그 때 그 여름에 대한 기억 어제 밤 잘들 주무셨습니까. 참 더웠지요? 저요?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어부친 채 선풍기를 밤새도록 틀어댔지만 베갯닛을 축축이 적시고 말았습니다. 두어 번 깨서 땀을 닦고 또 잠을 청했습니다. 이럴 때는 빨리 돈 벌어 집을 옮기고 싶은 생각마저 드는군요. 밤에도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에서 한 번 시원하게 자볼 수 없을까. ㅎ ㅎ 너무 호사스런 꿈입니까? 그래도 버틸 만은 합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생각나십니까? 그 때 그 더위 말입니다. 1994년의 여름, 이 나라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폭염이 기록된 그 해 그 더위. 저는 그 여름 이후 더운 여름을 만나면 항상 그 때와 비교합니다. “올해 덥네. 하지만 1994년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야. 이 정도는 참..

그 때 그 사람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사람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맡은 첫 사건-- 30대 초반의 나.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시절이었다. 꿈은 크고 푸르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비록 빛은 바랬지만 푸르른 꿈만은 마음 속에 계속 간직하고 있다.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일이다. 그는 무명의 변호사인 내가 맡은 첫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중년의 여인이 내 사무실을 들어왔다. 행색이 초라했다. 그 여인은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전전하다 내 사무실을 들어 온 모양이었다. 그 여인은 아들 일로 변호사를 구하고 있었다. 아들은 형사사건에 연루되어--사건 내용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아무래도 자세히 말하면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에 반하는 것 같으니--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금되어..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ㅡ한국을 떠나는 조카에게ㅡ 이런 글을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많이 망설였다. 사적인 이야기는 SNS에서 좀처럼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쓰기로 했다. 내 조카도, 그 부모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기에. 내 조카 태균은 여동생 아들이다. 올 해 26세. 필리핀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고, 한국에 돌아와 현역으로 병역을 마친 다음,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과로 편입해 올 2월 졸업했다. 매우 우수한 청년으로 졸업할 때 총장상을 받았다. 조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지만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 일찍이 아빠(내 매제)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시절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린 아들과 딸을 기르느라 고생한 여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

승우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승우가 그린 승우가 그린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그저 그 친구의 엄마, 아빠로부터 몇 마디 들은 게 전부다. 그 아이 이름은 승우. 서울의 어느 특수학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부모님 이야기로는 자폐아라고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지만 사실 매일같이 만난다. 오늘도 방금 전 점심을 먹고 그 아이를 만나고 왔다. 그의 엄마가 만들어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말이다. 나는 점심 때면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산책 겸 내 연구실에서 2킬로미터 쯤 떨어진 뚝섬역 근처로 걸어간다. 내가 발견한 몇 곳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요즘은 어느 가정식 백반 집엘 자주 간다. 단돈 오천 원에 집에서 보다 더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집!) 늘 상 가는 카페에 들어간다. 승우의 과 내 책 바로 승우 부..

거인과의 만남, 거인의 이별

거인과의 만남, 거인의 이별 사진 설명: 겐셔 외상 왼쪽으로 최영애(인권위 상임위원), 서보혁(인권위 북한인권 담당자), 오른쪽으로 김만흠(인권위 비상임위원), 내 옆의 인물은 기억나지 않으나 당시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 담당자였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전 독일 외상 한스 디트리히 겐셔. 89세. 그는 독일 자유민주당(FDF) 사람이지만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정부에서 각료로 출발해 슈미트 수상과 헬무트 콜 수상 정부에서 외상(부총리 겸직)으로 일했다. 그 기간이 자그만치 18년. 독일 현대 정치사에서 아마도 최장수 외상이었을 것이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브란트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집행한 이는 겐셔였다. 그는 헬무트 콜과 함께 통독의 주역으로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아침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K변호사를 만났다. 지하철역에서 천천히 고갯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척 무거워 보였다. 중절모를 썼지만 흰 머리카락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죠?”“어이구! 이게 누구여, 박변호사, 아니 박교수 아닌가. 이게 얼마만이지. 한 십여 년 된 것 같지.”“예, 제가 이곳을 떠나 학교로 간 지 대충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이곳엔 어인 일이십니까?”“아, 이 사람아. 나 아직 변호사야. 재판하러 오는 길이야. 집이 좀 멀어. 아침 일찍 지하철 타고 오는 게 쉽지 않군.” K변호사. 나보다 20년 연상이니 올해 70대 중반의 노인이다. 꼭 20년 전 내가 젊은 변호사로 변호사회에서 열심히 일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