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묘한 시기, 나는 잘 관리할 수 있을까

박찬운 교수 2019. 5. 10. 05:01

어려울 땐 이렇게 소리라도 질러보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묘한 시기인 것 같다. ‘묘하다’는 표현이 다소 우습지만 더 이상 그럴듯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위기인 것도 같고, 난관에 봉착한 것도 같고, 두렵지만 담담하기도 하고... 그런 중에도 뭔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묘하다고 한 것이다.

페북에서 이런 말을 쓰려니 주저하는 바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1만 명 이상의 페친앞에서 까발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이 글쓰기마저 없다면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 글쓰기는 공기요 물이며 한 가닥 지푸라기다. 누구한테 하소연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글을 씀으로써 마음을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것이다. 혼란스런 마음을 다잡는 것이고, 이 순간 이후 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

올해 89세이신 아버지의 병세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매일 아침저녁 혹은 중간에 전화를 해 체크를 하는데, 기력이 급격히 소진되시는 모양이다. 반 년 전만 해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밥 한 공기를 비우고 하루 만 보를 걸으신 분이, 이젠 화장실도 혼자서 가기 어려울 만큼 힘이 없으시다. 방금 전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제와도 다르다. 숨이 많이 차신다고 한다. 내일 가정간호사가 집으로 방문해 주사를 놓아드리기로 했다. 산소발생기가 필요한 것 같아 내일 아침 내가 담당의사를 만나 처방전을 받을 계획이다. 한 달 전 담당의사는 여명기간을 2-3개월로 보았는데... 과연 그대로 되어 가는 것일까.

불치 희귀병에 걸린 나의 형님 병세도 갈 데까지 갔다. 이젠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오로지 눈동자로만 대화를 한다. 내 나이에 병마가 찾아와 지난 5년간 병상에 누워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는 형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막는다. 나는 이런 집안의 콘트롤 타워다. 

나는 일을 해야 한다. 방금 전 멘티 학생들과 점심을 먹었다. 수다를 떨던 멘티모임이 어쩐지 조용해졌다. 말 많던 지도교수가 갑자기 과묵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나는 담담한 어조로 인간의 생노병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얼마나 피부에 와닿는 말이 되었을까. 

오늘 저녁엔 학회 임원들을 만난다. 회장으로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학회가 조금이라도 발전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집에 돌아가면 이번 달과 다음 달 예정된 학술대회 발표용 원고와 신문 기고용 원고도 써야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세상 일에도 간섭해야 한다. 진정한 폴리페서로서 ㅎㅎ.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이 글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최면이다. 따지고 보면 50대 후반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이 글 읽는 분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2019.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