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공부란 무엇인가-16살 소년이 터득한 공부 이야기-

박찬운 교수 2019. 5. 7. 09:55

 

과거 이야기 자주 하는 사람, 학창 시절 공부 잘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요즘 세상에선 꼰대라 부른다. 나는 그런 말 안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말을 막기 어렵다. 

젊은 친구들이여, 용서하시라, 이해해 주시라. 그대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름지기 나 같이 옛날 이야기할 때가 올 테니, 너무 지겹다고 말하지 말라.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듣기 싫으면 그저 조용히 웃고 지나가시라. 이것은 내가 동시대를 살아온 동년배 친구들과 잠시 추억의 돌담길을 걸으며 나누는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니.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추억의 상자를 발견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받았던 성적표와 상장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상자를 마지막으로 연 것이 적어도 12-3년이 넘었다. 맨 위에 올려져있는 것이 2006-7년 경 우리 집 작은 아이가 받은 중학교 성적표이니. 

중학교 3학년 성적표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선 70년대 흑백 필름이 돌아간다. 1977년... 내가 충청도 벽촌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만 4년이 되는 해였다. 이때가 내겐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과연 나는 서울이란 대처에서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시골촌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철이 들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부는 부모님이 아무리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공부하는 자의 주체적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니 철들지 않고서야 가능한 게 아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매우 일찍 철이 들었다. 빈한한 가정에서 성장한 내가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자연의 이치이리라. 철마저 늦게 들었다면 내가 어찌 그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비슷한 것은 대부분 아이들이 공교육만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과외수업을 받았다. 70년 대 중반 중학생들은 대학생이나 현직교사들로부터 과외교습을 받았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집안이 부유한 경우엔 개인적인 과외교습을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명학원의 종합반에 들어가 본고사 준비를 했다. 나는 형편이 안 돼, 초등학교 이래 고교 졸업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과외교습을 받은 적이 없다. 공부 잘하는 형이나 누나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안 되었다. 

사실 나는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는 과외교습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청계천 판자촌 아이들도 과외를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중학교에 올라간 뒤부터는 그 실상을 정확히 알고 고민이 커졌다. 과연 내가 저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방법도 몰랐고 자신도 없었다. 오로지 내가 할 일은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공부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1학년과 2학년은 그런대로 잘했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서울 아이들은 나와 정말 다른 것인가... 가끔 찾아오는 패배감과 우울함...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철이 빨리 들은 것은 내 삶이 그것을 절실히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내게 몇 가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공고를 가는 경우엔 교장 선생님 추천으로 금오공고 같은 국립공고에 들어가 학비 걱정하지 않고 기능공이 될 수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는 경우엔 모 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3년 간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 우리 반엔 몇 명 더 있었다. 그들 또한 다부진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3학년 1학기 초 성적은 반에서 4등(69명 중), 전교 석차 20등 내외(1040여 명 중).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좀 더 좀 더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자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이 되기 전 성적은 반에서 2등, 전교 석차 20등 내로 올라갔다. 2학기가 되어선 더 좋은 성과가 나왔다. 반에선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전교 석차도 10위권에 근접했다(1천명이 넘는 학생 중에서 10위권, 상위 1% 내로 올라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 잘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로선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개인 과외교습도 학원도 다니지 않고, 오로지 학교 수업과 자습으로만 얻어낸 성과였으니... 여기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내 공부의 역사는 중학교 3학년 때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을 명확히 알았다. 공부의 철이 든 것이다. 거기에다 공부의 자신감까지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약간의 기복은 있었지만, 대과없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것들이 내 머리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성적표를 보고 옛날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결국 내 자랑이 되어 버렸다. 꼰대노릇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ㅎㅎ

(2019.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