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이사를 했습니다. 17년 동안 살 던 집이 현재 재건축 중이어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전셋집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가 생각보다 힘듭니다. 저희 집 이삿짐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 중에서도 책이 좀 많습니다. 천정까지 닿는 서가가 15미터 이상이나 되니 그 양이 얼마나 될지 짐작이 될 겁니다. 거기다가 제가 종이로 된 물건은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케케묵은 잡동사니가 셀 수 없습니다. 이러니 이사비가 다른 집보단 훨씬 더 나옵니다. 돈도 돈이지만 정확하게 날라 제 서가에 꽂아주어야 하니 일하시는 분들의 수고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삿짐센터의 일하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 이틀 전쟁터와 같은 방을 이제 대충 정리해 갑니다. 평소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마지막 짐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상자 하나를 열었습니다. 이런 게 있었다니... 저와 아이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모아둔 상자입니다. 그것을 열어보니, 제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받은 성적표, 상장, 사법시험 합격자 통지서, 사법연수생 임명장(그날 연수원장 축사까지), 제 두 딸의 중고등학교 성적표와 상장 등등이 고스란히 모아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아보니, 제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입니다. 1969년 충남 청양군 사양면 소재 사양국민학교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는 1969년 3월 청양군 화성면 합천리 소재 화성국민학교 합천분교(당시 1학년과 2학년은 이 분교를 다니고 3학년부터는 그곳에서 2-3킬로미터 떨어진 본교를 다님, 1, 2학년 학급 수는 모두 4개)에 입학했습니다. 몇 달 그곳을 다니다가 여름 전에 인근 면인 사양면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희 부친이 그곳 면장으로 전근을 하셨기 때문에 따라 간 것이지요.
사양은 일제시대 이후 남한에서 가장 큰 금광인 구봉광산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저희 집이 이사를 할 무렵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금광의 갱도가 무너져 광부가 갇혔습니다. 무려 16일 만에 한 광부가 구조되어 그 이름을 전국적 아니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양창선씨라는 분이지요. 당시까지 광산사고로 가장 오래 동안 버틴 사건이랍니다. 그 덕에 기네스북에도 올라갔다고 하지요.
사양국민학교는 그 구봉광산 인근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엔 구봉광산 광부 자제를 비롯해 광산 사무직들의 자제도 많이 다녔습니다. 광산 사무직은 거의 모두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 자녀들은 한번 척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때깔이 달랐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가방도 없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묶고 다녔는데, 그 애들은 예쁜 백 팩을 두 어깨에 메고,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학용품(대부분 일제 제품)을 보란 듯이 갖고 다녔지요. 제가 바로 그 아이들과 1년을 함께 다녔습니다.
오늘 추억의 상자에서 발견한 것은 사양국민학교의 그 해의 성적표. 그 맨 뒤에 담임 선생님의 평가가 있군요. 지금으로부터 만 50년 전의 선생님 평가입니다. 맞춤법이 조금 달라졌지만 선생님의 평가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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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의체 단정하며 묵묵한 성격 학급아동의 신망이 있으나 가정학습이 부족한 편이오니 협조바랍니다.
2학기
두뇌 명석하며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점차 진전하는 어린이입니다 남자다운 기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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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보고 잠시 손을 놓은채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았습니다. 참 오래 전 이야기군요.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2019.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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