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사상

에리히 프롬에게서 얻는 삶의 방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전

박찬운 교수 2025. 5. 14. 10:14

에리히 프롬에게서 얻는 삶의 방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전

 

 

에리히 프롬의 3권의 책

이번 학기 나의 학부 강의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책 중 하나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그동안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프롬의 사상을 어떻게 하면 쉽게 학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다. 이번 학기는 그 수준을 넘어 에리히 프롬의 다른 저술과 연결해 프롬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의 다른 저작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있는 소유냐 존재냐사랑의 기술이다. 이하는 이 세 권의 저작을 하나로 잇는 일종의 강의안이다. 프롬의 사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 책들의 저작 연대와 관계없이 프롬의 사상을, ‘개인의 책임을 바탕으로 한 사랑-->그것을 바탕으로 한 존재적 삶의 양식--> 이러한 삶이 가능한 공동체에 대한 희구’, 이런 세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1. 사랑은 감정 그 이상이다

사랑은 흔히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해되지만,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기술이자 책임 있는 행위로 재정의한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며 판단이며 행동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닌, 존중, 이해, 배려, 책임의 실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특정한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연인,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성숙과 함께 실현된다.

 

 

2. 존재적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기

사랑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이 뿌리내리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이 살아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소유중심이라고 비판한다.

사람들은 지위, , 관계, 심지어 지식마저 소유하려 한다. 이는 곧 불안과 경쟁, 소외로 이어지며 인간의 내면을 고갈시킨다. 반면 존재적 삶은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자기 내면의 성장, 그리고 지금-여기의 충만함을 추구하는 삶이다.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사랑은 자연스럽게 피어나며, 인간은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3.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

하지만 이런 존재 중심의 삶은 아무 조건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프롬은, 인간이 자유를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 권위주의나 파괴성, 또는 무비판적 순응으로 도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고립과 불안을 이기지 못해 강한 지도자에게 의존하거나, 대중 속에 섞여 자기를 잃고 살아간다. 진정한 존재는 심리적 안정, 사회적 연대, 자아의식의 성숙 없이는 불가능하다.

 

4. 사랑과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인이 존재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프롬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으려면, 사회 역시 그에 걸맞게 조직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개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곧 자유란 소극적 자유를 넘어 적극적 자유이어야 한다. 이런 자유가 가능한 사회는 단순히 돈이 숭배되는 자본주의 사회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쟁과 소외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을 도구화한다. 전체주의는 자유를 억압한다. 해답은 인본적 사회주의, 나는 이것이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사회는 인간의 복지와 존엄, 연대와 책임,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며,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재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프롬의 사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에리히 프롬의 사유는 감정, 존재, 사회를 아우르는 전인적 인간론이며 동시에 사회적 비전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배운다. 사랑은 실천해야 하며, 존재는 선택해야 하며, 자유는 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2025.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