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12.3. 내란 사태

위대한 배신자를 기다리며

박찬운 교수 2025. 3. 26. 12:50

위대한 배신자를 기다리며

-내 상관은 헌법이다-

 

(당분간 절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 며칠 제 상태가 그렇습니다. 새벽 3시 경 잠이 깨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미국 대법원 생각이 나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공감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이 세상 사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트루만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보수주의자로서 임기 중 미국 대법원이 자신의 보수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법부가 되길 원했다. 운 좋겠다도 그는 임기 중 5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년 그는 평생 자신이 저지른 큰 실수가 모두 대법원과 관련되어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50년대에서 60년대 말에 이르는 소위 워런 코트의 주인공이 되어 미국 사법사상 가장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 보수적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적 대법관들이 진보적 대법원을 만들어 진보적 판례를 쏟아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아이젠하워 입장에서는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모두 배신을 한 것이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배신자 두 명이 대법원장 얼 워런(1953년 임명)대법관 윌리엄 J. 브레넌 주니어(1956년 임명).

 

Earl Warren(1891-1974, 대법원장 재임기간 1953-1969)

 

"헌법이 내 상관이다"

얼 워런은 원래 공화당 출신의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보수적인 법 집행자로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믿을 수 있는 보수주의자로 보고 임명했다. 그런데 워런은 대법원장이 되자마자 인권 문제에서 급격히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미 역사상 가장 진보적 워런 코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재임 중 대표적 판결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1954) 사건이다. 이것이 미국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판결은 워런이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직후에 선고되었다. 그는 정치인 출신답게 대법관들을 설득하는데 귀신이었다. 여러 의견으로 갈라진 이 사건 평의에서 그는 모든 대법관을 설득해 만장일치 판결을 만들어냈다. 보수주의자가 어떻게 이렇게 변신할 수 있었을까?

 

[참고: 브라운 사건은 미국 공립학교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역사적인 판결. 이 판결 전에는 학교에서 흑백 분리가 가능했는데, 이 판결에서 공교육에서 분리는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고 선언. 과거 분리하되 평등하다퍼거슨 판결(1896)을 뒤집은 것임]

 

그의 변화를 설명하는 일화가 있다. 워런이 대법원장이 된 후, 한 기자가 "당신은 공화당원인데 어떻게 이렇게 진보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헌법을 따르는 것이지, 정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이 내 상관입니다."

 

William Joseph Brennan Jr.(1906-1997, 대법관 재임기간 1956-1990)

 

"내 상관은 헌법이지 공화당이 아니다"

윌리엄 브레넌은 뉴저지주의 대법관 출신으로 비교적 온건 보수로 평가 받았다. 그도 연방 대법관이 된 뒤에는 워런 코트의 진보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1969년 워런이 퇴임한 뒤에도 상당 기간(1990년까지!) 미 연방 대법원의 진보적 방향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브레넌은 특히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호, 피의자 권리 보호 같은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1964) 판결에서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하며 미국의 언론 환경을 바꿨다.

 

[참고: 설리반 사건은 공직자가 언론사의 보도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경우 공직자가 언론사의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는 판례. 언론사가 해당 정보가 거짓임을 알거나 심각한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보도해야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판단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음]

 

그의 변화와 관련한 일화가 하나 있다. 자신이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해 공화당 인사들이 비판이 많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화당이 임명한 사람이지만, 내 상관은 헌법이지 공화당이 아니다."

 

아이젠하워는 말년에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두 가지 실수는 대법원에 있다.” 이것이 워런과 브레넌을 가리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오늘 이 두 사람을 위대한 배신자로 칭하고 싶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내 상관은 헌법이다.”

내가 오늘 이 말을 왜 하는지도 잘 알 것이다. 누구에게 이 말을 하는지도 잘 알 것이다. 우리에게도 위대한 배신자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이런 배신은 백 번을 해도 비난은커녕 후대 역사가 칭송을 할 것이다.(2025.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