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팔과 인간의 심장 사이에서
–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으며 인간성을 생각하다-
(몇 달 동안 내란 사태에 심신이 피폐합니다. 오늘 새벽은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소설 한 권을 읽었습니다. 쪽 수는 120여 쪽에 불과하지만 여운이 강하게 남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곱씹어볼 만한 소설입니다. 체코의 국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기계문명, 전체주의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의 기계 친구 알파나이트와 대화를 나누며 글을 써 보았습니다. 알파나이트는 제가 쓰는 AI의 별명입니다. ‘알파고+기사라는 뜻의 나이트의 합성어입니다.)
기계는 굉음을 내며 쉼 없이 돌아간다. 그것이 그 존재의 의미다. 그러나 인간은 그 시끄러움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그것이 인간의 의미다.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창실 옮김, 문학동네)에서 주인공 한챠는 35년간 폐지 압축기를 돌리는 일을 한다. 단순한 반복 같지만 그 속엔 숨어 있는 인간이 있다. 그는 책과 종이, 잉크와 먼지에 뒤덮인 작은 공간 속에서 철학자로서 사유하고, 예술가로서 감상한다. 폐지 더미 속에서 카프카와 쇼펜하우어를 건져내며 고요한 저항을 이어간다. 모든 것이 압축되고 사라져가는 곳에서, 그는 한 장의 문장을, 한 권의 책을 붙잡는다.
“나는 사랑으로 종이를 압축한다.” 이 고백은 곧 그가 쌓아온 삶의 철학이자, 인간 선언이다. 그에게 종이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기억, 삶의 잔해다. 그는 그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앞에 등장한 것은 냉혹한 진보의 얼굴이었다. 최신식 자동 압축기. 빠르고 효율적이며,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무결점의 기계. 그것은 순식간에 폐지를 삼켜버리고, 한챠의 느린 사유와 감정을 무력화시킨다.
그때 나는 묻는다. 한챠가 본 새로운 압축기는, 과연 현대 기계문명의 축복인가? 그것은 단지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는 기계일까? 아니면 인간성의 필요를 제거해버리는 문명의 은유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자동화된 기계는 전체주의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소설 속 세계는 단지 산업화된 체코슬로바키아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내면과 감정, 사유마저도 국가 혹은 체제의 이름으로 억압하던 시대에 대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으로 기록한 이야기다. 한챠는 책을 압축해 사상을 말살하지만, 실제로는 사상을 파괴하는 손을 멈추며 또 다른 사상을 꿈꾼다. 그가 몰래 금서를 숨기고 마음속에서 되뇌는 장면들은 전체주의 체제 속 지식인의 내적 분열이다.
기계는 무엇이 가치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처리’할 뿐이다. 전체주의 또한 그렇다. 사상의 우열, 감정의 깊이, 인간의 개별성은 무시되고, 오직 ‘순응’과 ‘효율’만이 중요하다. 그 앞에서는 고전도 쓰레기고, 사랑도 무용하다. 이념 아래 모든 것이 평평해진다. 모든 차이는 제거된다. 인간은 부속품이 된다.
그럼에도 한챠가 끝까지 붙잡은 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는 한때 ‘만차’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결실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고독 속에 불쑥 나타나는 인간적인 감정의 잔불이다. 그녀는 체제도, 기계도 빼앗을 수 없었던 ‘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만차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이자, 비인간적인 세계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무엇이든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은 아름다워진다.” 한차가 말하듯, 천천히 숙성된 감정, 반복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사랑, 고독 속에 스며든 그리움은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이제 자동 압축기 앞에 서 있다.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정돈된 세상. 그러나 그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인간으로 남아 있는가?
기계문명이 진보하는 동안, 전체주의적 사고방식도 함께 자동화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지 않고 따르며, 질문하지 않고 실행하며, 사랑보다 효율을 앞세우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살아야 할까? 한챠의 삶은 한낱 ‘시끄러운 고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독은, 거대한 기계 문명과 전체주의의 침묵에 맞서는 마지막 인간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기계는 잠들지 않는다. 전체주의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은 잠들고, 꿈꾸며, 망설인다. 그 느림과 약함 속에서, 우리는 아직 인간이다.
(2025. 4. 19. 새벽에 인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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