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최고의 변호사, 그는 누구인가

박찬운 교수 2015. 9. 27. 16:47

최고의 변호사, 그는 누구인가


법조계 들어온 지 30년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 변호사 일을 안 해도 지인들로부터 종종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좋은 변호사라? 그게 어떤 변호사인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양심을 걸고 이런 변호사야말로 제대로 된 변호사니 당당히 추천할 수 있는 변호사, 그가 누구인가?

생각해 보니 몇 부류의 좋은 변호사가 떠오른다. 그 기준은 변호사가 가져야 할 품성 혹은 덕성이었다. 몇몇 변호사 중에는 아래에서 제시하는 여러 품성을 동시에 갖기도 했지만 어떤 변호사도 그 전부를 갖진 못했다.

만일 그 전부를 가졌다면 당사자로서는 생애 최고의 변호사를 만나는 것이겠지만 그 변호사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세상사에서 완벽함은 없다. 완벽함은 그 자체로 허물이기 때문이다

1. 공감능력이 뛰어난 변호사
변호사 중에는 유난히 당사자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이가 있다. 당사자의 아픔을 타인의 그것으로 보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동분서주하는 변호사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팽목항에 내려가 유가족과 슬픔을 같이 하는 몇 몇 변호사, B, H, P 그들이 대체로 이 그룹에 속하는 변호사들일 것이다.

이런 변호사들이 맡는 사건은 돈이 되는 사건이 아니다. 반드시 법정에 가서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다. 돈도 되지 않고, 법정에 가도 성공하긴 쉽지 않은 사건, 변호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건들이 이들 변호사들에게 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호사들이 만나는 당사자도 사정을 잘 알기에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에게 승소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아픔에 동참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그러니 이들 변호사들은 어쩜 다른 변호사들 보다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돈을 많이 받고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그것은 사건처리에서 당사자의 뜻대로 사건이 끝나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이 부담감은 일반인이 모르는 변호사들만의 고민이자 스트레스다. 그런데 이들 변호사들은 최소한 이런 부담감에서 해방된다. 그 어떤 변호사보다 당사자와의 관계가 떳떳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호사들은, 이름하여, 사회적 소수자 약자의 친구들이다. 이런 변호사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맛이 난다. 내가 보기엔 이들은 비록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굶지는 않을 것이다. 적은 돈을 가져오지만 이들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비운다면 이런 변호사도 해 볼만하지 않겠는가?

2. 출중한 실력있는 변호사
변호사 중에는 법리에 밝은 변호사가 있다. 걸어 다니는 판례라고 불리는 변호사다. 요즘은 그런 변호사 이름을 듣기 어려운 데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들이 꽤 계셨다.

한 분을 거명하자. 돌아가신 유현석 변호사님이다. 이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 노대통령 변호인단의 좌장을 하신 분이었는데, 법조계에서는 법리에 밝으신 분으로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 분은 어찌나 기억력이 좋은지 50년 전 판례와 법령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한 마디로 무불통지였다. 특정 판례를 이야기하실 때는 그 판결을 선고한 판사를 거명하면서까지 그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후배 변호사들은 이분과 이야기할 때면 그저 입을 벌여 찬사를 연발하거나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저 연세에 저런 것을 어떻게 아실까? 아니 저게 몇 년 전일이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일인데, 저분은 그것을 어제 일어난 것처럼 말씀을 하시니... 도대체 나는 무어야, 이래 가지고 변호사 생활할 수 있겠나...

유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로 생을 마감하신 이돈명 변호사님과 막역한 사이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였으니 말이다. 이돈명 변호사님이 온후한 할아버지상이였다면 유변호사님은 고희를 넘긴 연세에도 재기발랄한 영원한 소년이었다.

사건 중에는 법원에 가도 법리논쟁이 예상되는 사건이 있다. 이런 사건은 바로 이런 출중한, 실력 있는 변호사가 제격이다.

법조계는 의외로 좁아 이런 분들의 명성은 어딜가나 자자하다. 그러니 이분들이 사건을 맡으면 법관들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법리판단을 잘못하면 그 사건은 여지 없이 대법원으로 갈 것이고, 거기에서 판사의 과오가 심판될테니, 그런 소송을 함부로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3. 용기 있는 변호사
변호사가 다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티가 안 나게 행동한다. 조용히 사건을 수임해서, 조용히 법정에 나가 변론하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린다.

사건을 성공리에 끝내고서도 성공보수를 못 받는 변호사도 있다. 당사자와 다툼을 벌이면 결국 피해자는 변호사라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변호사가 의외로 많다.

사건 중에는 때때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있다. 과거에는 세무사건도 그 중에 하나였다. 세무서 눈치를 보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으니 자칫 내가 맡은 사건이 세무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내 사무실 세무조사라도 받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시국 공안사건은 과거는 물론 현재도 대표적으로 용기가 필요한 사건이다. 레드 콤플렉스가 유난히 강한 사회에서 살다보니 그런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들마저 좌파로 몰려 곤욕을 치르곤 했다.

70년대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호하다가 바로 감옥에 간일도 있지 않았는가? 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가 대표적 예이다.

정권과 관련된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사건이나 정치권의 실세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때는 사건 수임과 처리과정에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 혹시나 괘씸죄에 걸려 이 정권 내내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건은 통상 민변 변호사들이 잘한다. 이들이 이런 사건을 잘 맡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진보적인 것도 있지만 역시 조직력이 한몫 한다.

민변의 수백 명 변호사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의 잠재적 지원군이다. 따라서 이들 동료가 자신을 지켜보고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들을 용기 있는 변호사로 만든다.

최근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담당한 민변 변호사 J, K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만나 보라. 한 성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매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분들이 국정원과 한판 승부를 벌렸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민변 변호사만이 용기 있는 변호사는 아니다. 그런 조직이 없이 홀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타고난 반골기질과 재야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변호사도 있다.

돌아가신 용태영 변호사가 대표적인 분이다. 이 분도 대한민국 법조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분인데 그 기개가 대단했다. 법조 선후배들은 이분을 '천하의 용변호사'라 불렀다.

이 분이 활동할 때가 박정희, 전두환 두 독재자가 기승을 부릴 때인데, 곧잘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기발한 소송을 많이 했다.

이 분 자택이 청와대 근처에서 있었다. 당시 경호실에서 이 일대에 사는 주민들을 대통령 경호한답시고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워낙 세게 나오시는 분이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도 피해 갔던 것이다.

불교계는 이 분에게 감사해야 한다. 불탄일이 공휴일이 된 데에는 이 분의 역할이 컸다. 이 분이 불자였는데, 성탄절은 공휴일임에도 불탄일이 공휴일이 아니었다. 이분은 여기에 분연히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도 기발한 착상을 통해서다. 성탄절을 공휴일을 지정한 것이 평등권을 침해한 위헌, 위법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소송결과로 불탄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소송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금 서초동 종합청사는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적 건축이다. 판사 위주로 만들어져 변호사나 민원인들에게는 대단히 불편하다. 내부구조가 마치 미로와 같아 법정을 찾아다니기가 불편하고, 89년 개청 이래 십 수 년 동안은 법정을 올라가는 민원용 승강기마저 없었다.

이 분은 이것을 소송으로 가져갔고, 급기야는 이 공사에 책임 있는 법관들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을 막는 변호사회의 특별결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용변호사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분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베스트 드레서로도 유명했다. 날렵한 몸매에 검은 중절모를 쓰고, 콤비 자켓을 입은채 법정에 들어서면 방청객들도 와하고 돌아 보았다. 거기에다 번쩍이는 만년필을 꺼내 몇 자 적으시는 폼은 패션과는 관계없이 사는 나 같은 후배에겐 피안의 인물로 보였다.

4. 사건에 집중하는 변호사
변호사의 당사자에 대한 일차적인 의무는 성실의무다. 사건을 수임하면 당사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변호사들이 당사자들로부터 성실성에서 의심을 받는다. 재판기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불출석을 하기도 하고, 기한을 놓쳐 소장이나 상소장을 제출하지 못해 당사자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일도 있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사건에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를 만나길 원한다. 내가 아는 L 변호사, 이 분은 그리 알려진 유명 변호사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지난 30년 동안 만난 변호사 중, 적어도 사건처리의 집중도에 있어서만큼은, 이분을 능가하는 변호사를 만나지 못했다.

L 변호사는 사건을 맡으면 자나 깨나 그 사건 생각만 한다. 심지어는 밤에 자다가도 그 사건 관련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러면 바로 깨서 서재로 달려가 꿈결에 생각한 아이디어를 글로 옮겨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밤 꿈은 통상 잊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는 데 나로서는 참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L 변호사는 사건 성공률에 있어 동료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높다. 그는 동료 변호사를 만날 때마다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한다.

허물없이 지내는 판사 동기는 그의 법률자문역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그 분야 최고의 현직 판사도 사석에서 만나면 그의 사건 자문을 해주어야 할 정도다. 그 정도니 사건을 수임하면 성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십여 년 전에 변호사를 그만 두면서 담당했던 몇 건의 사건도 모두 그에게로 갔다. 당사자들에게 욕 안 먹고 사건에서 손을 떼기 위해서는 확실한 변호사를 소개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때 머리 속을 스친 이가 바로 L 변호사였다.

5. 발 넓은 변호사
우리나라 법조계의 고질적인 폐습이 전관예우다. 이것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지만 아직도 국민 대다수는 이 문제를 법조계의 최대의 부조리로 인식한다. 전관예우가 판을 치는 이유는 사건처리가 변호사에 따라 달리 취급된다는 불신 때문이다.

그런데 전관예우는 없어져야 할 관행이지만 어느 변호사가 인맥을 잘 관리하여 동료 법조인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다. 아마 당사자들이 사건을 맡긴다면 이런 변호사가 선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내가 아는 M이라는 변호사. 그는 아주 사람 좋고, 예의 바르기로 소문난 분이다. 이 분은 주변 법조인들에게 특별히 인기가 있는데, 연수원 동기생 300명 대부분에게 생일 때면 꼭 메일 한 통을 보내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특별히 교유가 없더라도 생일 날 메일 박스를 열면 한 통의 편지가 와 있다. 그동안 격조했음을 사과하면서 오늘 특별한 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를 해 온다. 누가 이런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이렇게 주변 지인을 챙기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치열한 자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M 변호사는 정치인이 되어도 잘 할지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망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 정치는 하는 법이니 M 변호사야말로 제격이 아닌가.

여하튼 M 변호사는 이런 방식으로 동기생, 선후배를 대한다. 그러니 그에게 사건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나도 가끔 교실에서 예비 법조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사람을 성심으로 대하라고 조언한다.

로스쿨 학생들, 그들은 앞으로 험난한 법조현실에서 살아가야 한다. 얼마나 어렵겠나! 하지만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성실성만 제대로 터득한다면 법률가로 사는데 밥은 굶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이것은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간곡한 조언이다.(201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