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파탄주의 도입을 위한 두 방향

박찬운 교수 2015. 9. 27. 16:34

파탄주의 도입을 위한 두 방향


며칠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혼사건에서 파탄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로부터 파탄이 판명되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로의 판례변경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종래 판례를 유지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파탄된 부부라도, 유책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하는 수없이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오늘 내 관심사는 파탄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대법원 판결 다수의견의 주요 논리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향후 방향이야 파탄주의로 가는 게 맞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다. 우리 법제는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하면,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말하는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 조치’라는 게 무엇일까?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다는 가혹조항, 즉, 이혼을 허용하면 일방에게 가혹한 경우가 발생하여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나 이혼을 허용하는 경우 이혼 후 부양제도라든지 보상급부 제도 등 유책배우자가 이혼 후 상대방에게 부양책임을 지는 제도임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법원은 이혼 후 유책배우자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된 방법으로 상대방을 부양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파탄주의를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깨진 부부생활은 정리되는 것이 마땅함에도 유책배우자 상대방의 복리를 위해 당분간은 파탄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다.


대법원 판결의 함의? 쉽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남편들아, 네 행복 찾으려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세상에 마누라를 버려? 에이, 의리 없는 놈아, 죽을 때까지 책임져라! 아내들아, 이 모진 세상에서 헤어지면 어찌 살런가. 어쩔 수 없다. 남편 바지가랭이 잡고 그냥 살아라."


나는 페북 공간에서 여러 번에 걸쳐 복지제도를 말한 바 있다. 복지제도는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물적기초가 됨을 강조했다. 내가 아는 한 유럽의 여러 나라가 파탄주의를 채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물론 파탄주의와 복지제도가 논리필연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곳에선 파탄된 가정을 국가(법원)가 나서서 살리려 하지 않는다. 이불 속 문제는 부부 당사자만이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헤어진다고 해도 국가가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양성평등이 확실하고 거의 모든 부부가 직업을 갖고 있으며 노인이 되면 연금을 받는다. 아이들은 낳기만 하면 보육과 교육 그리고 건강을 사회가 책임진다. 때문에 이혼을 하면서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이나 아이들 양육이나 교육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


어떤 길이 방향일까?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좀 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ㅡ그런데 돈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돈 없으면 이혼도 못한다는 말인가ㅡ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하는가. 그 때까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깨진 부부들이라도 그냥 눈 꼭 감고 살 수 밖엔 없는 것인가.


아니면, 깨진 부부들이 돈 문제로 인해 이혼 못하는 비극을 국가가 풀어주는 방향, 즉 복지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어떤 상황에서도ㅡ 비록 유책배우자라 할지라도ㅡ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법일까. (우리 대법원은 이 방법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대법관들의 복지제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파탄주의가 복지제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느 대법관도 모른단 말인가!)


두 방향 모두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페친들에게 묻고 싶다.(2015.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