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28

고통 속에서도 웃자 ㅡ이 또한 지나가리라ㅡ

고통 속에서도 웃자 ㅡ이 또한 지나가리라ㅡ 사람들은 나를 보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 한 몸뚱이만 보면 그렇다. 돈 많은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크게 부럽지 않다. 내가 그들보다 못 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진짜 부러워하는 이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사는 사람, 큰 것 바라지 않으면서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 나는 그들이 진짜 부럽다. .나를 꽤나 어렵게 하는 것은 주변 가족의 고통스런 삶이다. 오린 기간 그들 삶 자체가 내겐 아픔이었다. 최근엔 생노병사의 고통이 크다. 나의 형님은 중병에 신음하면서 어느 요양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거친 숨을 쉬고 있다. 아버지는 말기 암으로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사신..

어머니

어머니 19년 전 이맘 때. 어머니는 생을 마감했다. 68세. 가시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평소 건강한 분이라 일찍 가실 것을 누구도 예상 못했는데... 암 판명 6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다. .다행히 돌아가시는 순간 나는 어머니 옆에 있었다. 지금도 그 상황이 선하다. 사람이 숨이 끊어질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함께 있던 누이가 그것을 보자 쓰러졌다. 나는 누이를 업고 한 층 아래 병원 응급실로 뛰었다. 갑자기 뇌졸중이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 누이에겐 크나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39살 팔팔했던 나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이제 반백을 넘어 올백이다. 아이들도 컸다. 주변 환경도 많이 변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다 사라진다. .오늘 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좋은 게 없다. 내 생애에서 효자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아버지는 늘 내겐 어려운 존재다. 요즘 자주 전화를 드리지만, 아버지가 그립고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 아버지를 대하면서 조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새로운 게 아니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이런 고백을 이런 자리에서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만... 설사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들으신다고 해도 자식을 그렇게 나무라진 않을 것 같다. 어쩜 이것이 내겐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사랑 고백일지 모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남다른 의지와 ..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김윤식 선생(1936-2018)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타계했다. 선생은 학문 없는 세상에서 학문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실천한 분으로 통한다. 그의 삶은 오로지 공부의 연속이었다. 오로지 읽고 오로지 썼다. 200권이 넘는 저서가 그의 삶을 오롯이 증거한다. 그의 학문하는 자세,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에 존경의 염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윤식 선생이 보여준 학문하는 자세는 그 길에 들어서길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 없이는 어떤 이도 제대로 된 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 이런 말이 얼마나 공감을 받을까 만은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버릴 수 없다. 그것이 한심한 현재를 이길 수 있는 힘이기 때..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 우연히 서가를 정리하다가 옛날 쓴 글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소개한다. 대학 3학년 시절(만 21세)의 글인데, 나는 그 때 한참 고시공부 중이었다. 겨울방학 직전 고시반 기숙사에서 쓴 글이다. 긴 글이라 앞뒤를 빼고 중간 부분만 발췌한다. .이 글을 읽어보니 내 문체가 어쩐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약간 신파조다. ㅎㅎ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내 20대 초의 상념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다. 마치 젊은 시절 한 순간을 흑백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내용이다. .“삶이란 단지 환락은 아닌 것, 삶은 욕망과 결심. 인간은 가문으로서 고상해지지는 않는 것. 얼마나 많은 거룩한 이들이 살인자의 후예인가? ..

영원한 나라로 가신 내 삶의 표상 겸산 최영도 변호사

영원한 나라로 가신 내 삶의 표상 겸산 최영도 변호사 최영도 변호사(1938-2018) 어제(토요일) 오후 적막한 연구실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제 평정심을 와르르 무너뜨렸습니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께서 세상을 뜨셨습니다.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변호사님은 제 삶의 표상이셨습니다. 황망한 마음이지만 먼 길 떠나시는 변호사님을 추모하며 이곳에 몇 자 적습니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1938-2018, 이하 ‘선생’이라 호칭함, 이것은 존경의 염을 담아 부르는 경칭임). 모르는 분들에게 선생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까요. 5년 전 출판된 문명기행기 (네잎클로버) 서문에서 제가 선생께 드린 감사의 말씀을 옮겨보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되는 데는 적잖게 주변 도움이 컸다...

은사 차용석 교수님을 추모하며

은사 차용석 교수님을 추모하며 나는 대학시절 모범생(진짜!)이긴 했지만 은사님들 보시기엔 결코 예쁜 제자는 아니었다. 강의 능력도 없으면서 강의실에 들어오는 분은 내 밥이었고,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으면서 거들먹거리는 분은 결코 교수로 인정한 법이 없었다. 한마디로 당돌하고 건방진 제자였다. 그래서 인지 세월이 한참 지나서까지도 은사님들 사이에선 나를 꽤나 별난 놈으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이 부족한 제자를 용서하소서! 그런 기억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한 분이 계시다. 형사법을 가르치신 석우 차용석 교수님이시다. 학계에서는 호불호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엔 그분만한 분이 없었다. 우선 선생은 선천적으로 훌륭한 풍모를 가지고 계셨다. 누가 보아도 선생에게선 대학자의 풍채와..

호소합니다! 아담과 이브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약 2주간 저희 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브'(가명)의 남편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크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11월 27일부로 모든 게 잘 끝났습니다. 여기에 그 기록을 남겨 둡니다. 호소합니다! 아담과 이브를 만나게 해 주세요 .(페친 여러분, 이 글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언론사에 계신 친구 여러분, 이 글에 특별히 관심 가져 주십시오.).성격이 원인일지 모르지만 저는 남에게 저나 가족을 위한 일은 부탁하지 못합니다. 고관대작을 지냈던 분들이 자기 자식 취직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면, 제 자식들에겐 아비를 잘못 타고 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부탁 잘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제자나 외국인 친구를 알게 되면 저는 ..

혼밥 인생들아, 오늘도 당당히 혼밥을 하자

혼밥 인생들아, 오늘도 당당히 혼밥을 하자 어제 시내에서 회의를 마치고 밥 때가 되어 광화문의 유명한 국밥집을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국밥! 혼밥이었지만 그런대로 광화문의 추억을 그리며 맛있게 한 끼를 때웠다. 누군가 혼밥을 '사회적 자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이 일말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나는 사회적 자폐아(사회적 자폐적 인간)다. 11년 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나는 일상적으로 혼밥을 한다. 물론 가끔 동료교수들이나 학생들과 주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지만 주로 혼자 먹는다. 나는 연구실에 들어가는 순간 한 성의 성주가 된다. 그곳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내겐 그곳보다 아늑한 안식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곳을 쉽게 나오지 못한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게 되면..

정(情)의 대가

정(情)의 대가. 오늘은 제가 좀 우울합니다. 몇 시간 전 우리 법과대학 마지막 졸업식에 참석한 이후 계속 저기압 상태입니다. 우울할 땐 수다가 약이라던데...저녁밥 먹고 열 일 제치고 수다를 떨어볼까 합니다. 제 페친 중엔 교수나 교사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 수다는 그분들이 들으면 딱인데, 아마 다른 분들도 듣다보면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친구에게 정을 듬뿍 주어 본 일이 있는가요? 정이란 것은 특별히 대가를 바라고 주고받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정을 준 친구로부터 서운한 일을 당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분 나쁘지요? 선생들에겐 이런 일이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일어난답니다. 여러 학생을 지도해도 유난히 정이 가는 친구가 따로 있거든요. 작년 졸업식 때니 꼭 1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