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나의 아버지

박찬운 교수 2019. 2. 7. 21:22

나의 아버지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좋은 게 없다. 내 생애에서 효자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아버지는 늘 내겐 어려운 존재다. 요즘 자주 전화를 드리지만, 아버지가 그립고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 아버지를 대하면서 조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니 새로운 게 아니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이런 고백을 이런 자리에서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만... 설사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들으신다고 해도 자식을 그렇게 나무라진 않을 것 같다. 어쩜 이것이 내겐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사랑 고백일지 모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남다른 의지와 타고난 강건함을 가지신 분이라고. 올해 89세. 작년 말 아버지는 병원 담당의사가 중병(말기 암)에 걸렸다고 진단하는 바람에 입원하셨다. 하지만 항암치료 두 번 받으시고 더 이상 받기 싫다며 야밤에 병원을 나오셨다. 진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 잘 모르지만, 현재로선 아무 치료도 하지 않음에도, 상태는 꽤 안정적이다. 의사의 진단이 틀리길 바란다. 우리 아버지가 현대의학을 준열하게 꾸짖고 자신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시길 두 손 모아 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시대를 잘 타고나 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세상의 어느 아버지보다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 살았을 거라고. 연세가 90 가까이 되었음에도,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신다. 지난 두어 해 온갖 실패 끝에 최근엔 카톡도 곧잘 사용하신다. 주 1회 컴퓨터 교육에도 참여하시는 데,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에도 그 교육에 못 나가시는 것을 몹시도 아쉬워하셨다. 이번 설 연휴 중에도 사용 중인 컴퓨터가 말썽이라고 해서 내가 사용하던 구형 노트북을 갖다 드렸다. 아마 올 한 해 아버지가 잘 버텨주신다면 연말쯤 아버지의 컴퓨터 실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아버지를 싫어해도 내 모습 중 상당부분은 아버지를 닮아 있다고. 어쩜 아버지는 내 원형의 모습일지 모른다. 가공하지 않은 원석 같은 존재... 나는 가끔 섬찟하며 웃을 때가 있다. 내 목소리를 스스로 들을 때다. 이 목소리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아버지 목소리다. 아, 남들은 나를 아버지의 환생이라고 여길지 모르겠구나! 피는 속일 수 없지... 하기야, 아버지가 한국 전쟁 중 국군장교가 되어 입대한 부대가 내가 군대생활을 한 바로 그 부대다. 육군 제11사단 화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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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불효자 한 마디만 하오니, 부디 건강하소서. 즐겁게 지내소서!

(2019.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