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기타

사진으로 읽는 인문학--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위치한 곳?

박찬운 교수 2015. 9. 28. 11:20

사진으로 읽는 인문학--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위치한 곳?--

학문하는 자여, 종교에 함몰되지 말지니라, 정치에 함몰되지 말지니라


<요즘 세월호로 참 답답하다. 어제는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합의로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런 착잠함 속에서 나는 이런 글을 쓴다. 그런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야기... 하지만 내겐 중요한 이야기... 이것이 책상 앞에서 책을 보고 글을 써야 하는 나의 숙명인가?.>


나는 1년 동안 스웨덴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가족 없이 혼자서 말이다.

작년 5월의 일이다. 스톡홀름에서 세미나가 있어 참석했다가 오는 길에 웁살라 대학을 들렀다.


웁살라 대학 박물관, 과거엔 학교 본관이었다. 맨 꼭대기 쿠폴라가 보인다.


이 대학은 1477년 설립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그 학문적 수준은 이미 오래 전에 세계적 대학의 반열에 들어갔다고 평가되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스웨덴에서 체류하는 동안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생물 분류법으로 잘 알려진 식물학의 대가 칼 린네가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교수로 일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웁살라의 상징인 웁살라 대성당(세번 째 사진) 바로 옆에 있는 웁살라 대학 박물관(구스타비아눔, 첫번 째 사진)의 한 방이었다.


박물관 꼭대기의 쿠폴라 안은 이런 해부학 교실이 있다.


백문이불여일견! 두번 째 사진을 한 번 보시라. 이 박물관 건물은 과거 웁살라 대학의 본관 건물이었는데 그곳 꼭대기 층 쿠폴라 바로 아래 채광이 기가 막히게 되는 곳에 사진 상의 방이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해부학 교실은 사진으로 보아도 대충 짐작하겠지만 마치 조그만 원형경기장을 보는 듯하다. 교실 가운데에 시체해부를 하는 테이블이 있고, 그것을 학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층층의 갤러리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이 해부학 교실에서 꽤 오래 동안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마침 관광객도 뜸한 시간대라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원래 이런 식의 해부학 교실은 1594년에 이태리 파도바 대학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유럽 전역의 대학에 그 모양의 해부학 교실이 전파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해는 우리나라에 왜군이 쳐들어 와 3년째를 맞는 해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왜군들을 피해 선조가 저 의주까지 피신 갔다가 남해의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종묘사직을 버티던 때였다. (요쯤 대인기인 영화 명량이 생각난다!)

이런 때 저 먼 땅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는 이런 해부학 교실을 만들어 의학도들은 학교에서 시체를 직접 해부해 그 내부를 들여다 보는 의술을 익히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당시 선조의 주치의로서 후일 동의보감을 편찬한 의성 허준 선생이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사진 한 장으로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뛰어 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서구가 르네상스를 맞이 하기까지는 동양이 서양을 앞섰다고 하지만 사람의 인체를 메스로 갈라 그 내부를 속속히 볼 수 있었던 16세기, 서구는 드디어 중국과 아시아를 뛰어 넘었던 것이다.


분명히 알아둘 것은 서구인에게 있어서도 인체를 해부하는 것은 금기였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인체는 하느님의 성전이므로 그것을 해부하는 것은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선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하면서 인체 해부를 금기시 했는데 서구는 절대적인 종교를 앞세워 인체 해부를 금기시한 것이다(레오나드로 다빈치가 인체 해부도를 그린 것을 보면 그는 상당 수의 사체 해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인체 해부는 금기였다) .


따라서 서구인들이 인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체를 과학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고, 인체는 성전이라는 종교관의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인들이 발전시킨 과학적 진리(knowledge)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웁살라 대성당,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진리는 검증을 전제로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신 종교적 신념(belief)은 이성을 초월하는 그 무엇으로 때론 과학적 진리와 관계없이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종교는 인류사에서 이성이 통하지 않는 대표적 권력이었다. 합리적 이성을 배반하는 것에서는 속세의 정치적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때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 혹은 과학적 진리를 무시한다.


정치적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과학적 진리는 인류의 재앙이 되기도 했다. 원자폭탄은 바로 과학적 진리가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권력을 만났을 때 만들어진 최악의 결과였다.


따라서 종교에 가까워진 학문은 미신이며, 정치에 가까워진 학문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과학적 진리는 이 두 개의 권력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나는 과학적 진리는 이 두 권력의 중간에 서서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웁살라 대학의 박물관 위치는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건물이 대학 본관으로 사용될 때 이 건물은 웁살라 대성당과 웁살라 영주의 정청 사이의 딱 중간에 해당되는 지점에 세워졌다. 세우다 보니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다! 웁살라 대학은 우연히 그렇게 세워진 것이 아니다. 속세의 권력과 종교적 권력의 중간에서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고도의 긴장감! 그것을 상징하는 그 위치에 세워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교훈을 얻는다. 학문하는 자여, 종교에 함몰되지 말지니라, 정치에 함몰되지 말지니라.(2015.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