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기타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박찬운 교수 2015. 9. 27. 04:47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진화론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인간이 진화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인간이 가진 감정, 특히 예술적 감정도 몇 천 년 시간이 가면 진화적 관점에서 상당히 달라질까?

과연 그럴까?

몇 년 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거기 제1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4천여 년 전의 조각품. 우리가 크레타 문명이라고 말하는 에게해 섬에서 발견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조각품들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했다.

내가 4천년 전의 조각품 전시실에 간 것이 아니라, 혹시 20세기 추상조각 전시실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세부적인 표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감각이 이미 추상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특히 몇 몇 작품은 20세기 작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보는 듯 하였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 이 말은 이미 2천 년 전 유태인들이 만든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다.

헨리 무어는 분명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으리라,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적당히 베낀 것은 아닐까?

우리 인류는 지난 4천 년 동안 수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업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감성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4천 년 아니 1만 전의 인간이나 현대의 인간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진화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정도의 시간은 큰 의미 없는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더 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람의 아픔에 더 공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누구는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야생에 산다고.



이 사진은 에게해의 어느 섬에 발견된 크레타 문명의 조각품이다. 아마도 가족을 표현했으리라. 독일 바덴주립박물관 소장


이 사진은 헨리 무어의 <가족>이라는 작품이다. 옆의 4천 년 전 작품과 비교하여 어떤가? 어떤 것이 예술적으로 뛰어난가? 미국 뉴욕 보태니컬 가든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