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역사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운 교수 2023. 11. 24. 03:41

국가인권위원회 최대의 위기, 인권위는 어떤 인권위원을 필요로 하는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기록한 인권위 3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시끄럽다. 혹자는 인권위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도 한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권위원 구성원이 바뀌자 인권위 운영에 큰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며 인권위에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사람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법 학자이자 인권변호사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지난 3년간(2020년 1월-2023년 2월) 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 초대 군인권보호관 겸직)을 역임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권위가 어떤 조직인지, 인권위원은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이 시대에 바람직한 인권위원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인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인권위’라고 불리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의 지식과 기억력에 의존해 집필한 것이 아니다. 취임일부터 퇴임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일과 인권위의 주요 업무를 기록했다. 그 양이 무려 200자 원고지 6,000장! 저자가 스스로를 인권위 사관(史官)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집요함은 그의 평소 철학인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한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삶을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에 기초해 쓴 ‘일과 삶의 역사’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지난 3년간 인권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이슈에 대한 생생한 뒷이야기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박원순 시장 사건을 처리하면서 저자가 경험했던 고뇌,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탈북어민 강제송환 사건의 처리과정에서의 논쟁, 평등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경과,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인권위 내에서의 갈등 등이다. 책의 2장에 이 내용이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 사안들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일기를 함께 보여주며 사건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더불어 사건의 진상과 미래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인권위를 거쳐간 많은 인권위원이 있지만, 인권위에 재직하는 동안의 일들을 소상히 기록한 이는 박찬운 교수가 처음이다.

인권위가 맡고 있는 사안들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것들이다. 이에 이 책은 인권위에 관심을 갖는 인권 관계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에게 충분히 가닿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인권위를 이해하고 시민과 함께 걸어가는 인권위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특히 최근의 인권위 사태를 걱정스럽게 보는 이들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인권위원은 어떤 능력과 자질, 그리고 소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 지은이 박찬운
현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 20대에 법률가가 되어(1984년 사법시험 합격)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변호사로 일하면서 양심범, 사형수, 난민, 한센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과 상임위원(차관급·군인권보호관 겸직)을 역임하면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차별금지법,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인정 등 인권위의 대표적 인권정책 권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특히 2020년부터 3년간 수천 건의 진정 사건을 맡아 그중 500여 건을 인권침해로 인정해 관련 기관에 피해자 구제를 권고했고,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군인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바쁘게 살면서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미국, 일본, 유럽을 오가며 전공인 「인권법」을 연구했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편적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다. 2006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인권 연구와 함께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하며 사회변혁을 꿈꾸고 있다. 『인권법』 등 여러 권의 전공서와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를 비롯해 다수의 인문 교양서를 출간했다.
 
■ 차례
책을 열며: 일과 삶의 역사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인권침해 피해자의 절규에 응답하다
박원순 시장 사건 | 변희수 하사 사건 | 탈북어민 강제송환 사건 | 광주OO대 채플 사건 |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 미란다 원칙 고지 위반 사건 | 장애인 비하 발언과 비하 기사 | 공군 여군 부사관 성폭력 2차 피해 사건 | 일본군위안부 수요집회 사건 | 교정시설 과밀수용

3장 인권보호를 위한 그물망
「평등법」 제정 권고 | 제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 | 「인권정책기본법」 제정 노력 | 낙태죄 폐지 의견표명 | 노란봉투법 의견표명

4장 군대에 간 젊은이들을 위하여
군인권보호관의 사무처 지휘권 문제 | 군인권보호관 출범, 그리고 업무 개시 | 군대 내 사망 사고 처리 | 부대 방문, 연이은 인권교육

5장 인권위, 최고의 인권전문기관으로
조사관 전문성을 위한 노력 | 수준 높은 결정문 작성을 위해 | 사무총장과 국과장의 업무 능력

6장 코로나 속 세계를 향해
인권위 주최 국제행사 참석 | 외국 대사와의 만남 | 마라케시 국제회의 참가

7장 직원들과 보낸 망중한
너무 늦은 세운상가 탐방기 | 아련한 추억을 찾아-중부건어물 시장 탐방기

8장 인권위의 미래를 구상하며

9장 퇴장

책을 닫으며: 삶은 단순하게, 생각은 깊게

부록1 결정문 작성 예시
부록2 마지막 강의안
 
■ 책 속에서

나는 이를 위해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어 첫 출근을 하는 날 결심한 게 있다. ‘공직에 나가 있는 3년 동안 내가 경험하는 일들을 모두 기록할 것이다. 내 경험을 그저 개인의 기억 속에 두지 않을 것이다. 기록하고 또 기록해 내 경험을 역사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 고위 공직에 출사하는 사람의 태도다.’ 나는 이 결심을 임기 내내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가끔 피곤하고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이 기록만큼은 일상 습관으로 확고히 만들었다. 집으로 퇴근하면 첫 번째 일은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늦게 귀가하면 다음날 새벽 어제 있었던 일을 반추하면서 기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3년 1개월 동안 200자 원고지 6,000장 정도를 썼다. 실로 방대한 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다. 쓴 사람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간 나는 인권위의 사관(史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록 속에는 3년간 내 경험이 모두 담겨 있다. 내가 직접 다룬 사건의 내막, 내가 쓴 결정문 중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들의 내용, 인권위 내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에피소드, 인권위 사람들에 대한 평가 등등. 후일 이 기록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서로 평가받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면 인권위의 공적 기록물은 남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에 대한 그 이면 이야기는 인권위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_「책을 열며」, 5~6쪽

 

어제는 종일 피로한 하루였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는 고 박원순 시장의 비위를 판단하는 시간. 수개월 간 이어졌던 이 사건의 특조단 조사가 끝나고 지난해 말 차별시정위에서 1차 심의를 마친 안건이 전원위에서 최종 논의된 것이다. 이 안건 논의를 위해 몇 날 며칠을 생각했다. 어떤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어떤 결론을 내야 하는가? 나는 회의 모두에 이런 말을 했다.
“박원순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회운동가, 인권변호사 출신의 4선 서울시장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고인이 되어 우리 앞에서 오늘 판단을 받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순간, 인권위의 사명과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인권위는 인권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으로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대상이 어떤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있다고 해도 공정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인의 공적과 과오의 구별은 엄격해야 합니다. 공이 과를 가릴 수 없고, 과 또한 공을 가리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국민들의 인권위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_「2장 인권침해 피해자의 절규에 응답하다」, 32쪽

 

내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정책 사안은 「차별금지법」, 곧 「평등법」 의견표명이었다고 생각한다.인권위는 2006년 처음으로 포괄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평등법」 제정을 관련 기관에 권고했다. 이 권고는 다른 법률 권고와 달리 인권위가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법안의 초안을 만들어서 권고(의견표명)하는 것이라 인권위 입장에서는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비록 2006년의 권고가 바로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진 것은 분명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었는데 모두 인권위 권고에 토대를 두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2006년의 작업은 내가 실무책임자로 일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상임위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이 일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2006년 당시 나와 함께 일했던 최영애 상임위원을 이제는 위원장으로 만났던 터라 인권위에 출근하고 나서 며칠 후 최 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시즌2를 시작한다고 하면서 거기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 그렇게 해서 차별 분야 업무를 맡고 있는 정문자 위원과 함께 준비팀에 참여했다. _「3장 인권보호를 위한 그물망」, 111~112쪽

 

나는 군인권보호관 준비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평소 나와 위원장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두 사람이 갈등한다는 것은 정말 원치 않는 일이었다. 나는 송 위원장을 오랜 기간 법조 선배로 존경해왔고, 인권을 대하는 방향성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고 믿어 왔다. 때문에 내 임기 동안 위원장과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 그 어떤 시기보다 진보적인 인권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고 결심해온 터다.
그런데 군인권보호관 출범을 준비하면서 위원장과 나 사이에 의견이 자꾸 엇갈리는 것 같아 심적 부담이 커져만 갔다. 내 신념은 비록 합의제 기구인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이 들어왔지만 입법 취지에 맞춰 기민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군인권보호국을 군인권보호관이 직접 지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위원장과 사무처는 기존 위원장의 사무처 지휘권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좋은 운영 체제를 만들려 했지만 아쉽게도 위원장과 사무처 간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_「4장 군대에 간 젊은이들을 위하여」, 177~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