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가을밤의 넋두리-고독한 삶은 운명인가-

박찬운 교수 2023. 9. 28. 04:35
언제나 결국 혼자다.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가을밤의 넋두리-고독한 삶은 운명인가-

긴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그렇게 더웠던 염천 지옥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조금 센티한 말을 해야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습니다. 과거엔 이 나이가 되면 꽤나 괜찮은 어른이 될 줄 알았습니다. 공부도 남들 하는 만큼 했고, 경험도 크게 부족하지 않으니 경륜과 지혜를 갖춘 선배로서 제법 신나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되었는데도 제 자신은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헛산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한계도 느끼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이란 놈이 저를 더 세게 잡는군요. 집과 연구실을 오가며 단조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이 근본적 원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가리는 저의 성향이 더욱 문제입니다.

지난 30년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에게 정치를 권했습니다. ‘박변호사(박교수)는 여의도로 가면 최고의 정치인이 될거야’ 하면서 저를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가끔 그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무나 만나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정치적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젊은 날부터 사람을 가렸고 소수의 사람과 진한 우정을 나누길 좋아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학연이나 지연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선 나이 들면 젊을 때보다 학연과 지연을 더 중시합니다. 그것은 동창회나 향우회에 모이는 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젊을 때는 모이지 않다가 나이 들면 점점 많아지는 게 동창회 아닙니까. 이들의 정서는 무조건적입니다.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같은 고향 사람이니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성향이 매우 희박합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저와 지향점이 유사하느냐 여부입니다. 이 말은 제가 골수 좌파 이념주의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아무리 보아도 그리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지향점은 대체로 유사한 정치적 신념? 대체로 유사한 세계관? 그런 정도입니다.

제가 이곳에 자주 들어오는 이유는 그런 유사점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의 말을 유심히 듣습니다. 그들의 글을 찬찬히 읽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강한 소통의 욕구가 생기면 저도 제 생각을 정리해 글을 올립니다. 저는 거기에서 강한 동지애를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학창시절 3년 혹은 4년을 함께 했던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강한 연대감을 줍니다. 그러기에 지난 10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만 이곳은 때때로 삭풍이 부는 곳입니다. 말 한마디로 글 한 줄로 친구 관계가 끊어질 수 있으니까요. 얼굴 보지 못한 친구가 대부분이니 인연을 끊기도 쉽습니다. 위로를 받기는커녕 상처 받는 일이 많습니다. 어느 날 정전이 되면 그날로 남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가끔 허무함도 느낍니다.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으려고 긴장도 합니다.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지요. 나이 먹으면 자유를 얻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도 사방이 족쇄입니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인가요. 우리는 낳는 순간 사슬에 얽매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인가요?

그저 가을밤 넋두리로 알아주세요. ㅎㅎ. 제가 가을을 꽤 타는 남자거든요.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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