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스쳐지나 갈 수 없는 영화 ‘범죄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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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에 대해 호평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영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하다. 그 정도의 작품성이 있는 영화라면 천만관객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순항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쉽진 않을 거다. 작품이 좋다고 흥행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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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혹평 받아 마땅한 영화 한 편을 이야기해야겠다. 며칠 전 요즘 잘나간다는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범죄도시. 이 영화는 조선족들의 거리로 알려진 가리봉동에서 일어난 실화배경의 영화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잔혹한 조선족 조직폭력배를 일망타진하는 금천경찰서 소속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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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던 대로 여러 가지 면에서 흥행에 성공할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한눈을 팔 수 없었다. 특히 형사로 나와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하는 주인공 마동석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알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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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보는 중에도... 영화관을 나올 무렵엔 더욱... 마음 한켠에선 불편함이 몰려왔다. 왜일까? 그것은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혐오’를 배경으로 한 것이고, 그것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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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가리봉동이라는 공간을 혐오공간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고 하자. “가리봉동에 가면 중국동포들이 만드는 진짜 중국음식들이 즐비하다고 하는 데... 그것 먹으러 한번 갈까요?” 이 질문에 “그럽시다”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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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한국에 와서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해 편견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주진 않을까? 극장을 나오면서 관객들의 표정에서 이런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조선족들 정말 대단해. 우리 한국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라.” 심히 걱정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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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흥행을 노린 것이긴 하지만 조직폭력배를 다루는 우리 경찰의 모습이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공권력을 행사하는 형사들이 폭력배와 똑 같이 취급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는 형사가 조사하면서 피의자 패는 것을 애교수준으로 보여주던데... 나로선 심히 불편했다. 내가 요즘 경찰개혁위원으로 매일같이 인권경찰 운운하고 있어 조금 예민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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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포스팅이 이 영화를 제작한 분들에겐 상당히 불편할지 모른다. 나도 영화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꼰대같은 이야기만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로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천만관객이 모이는 영화란 천만권의 책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그런 영화가 혹시나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부의 사람들에 대해, 일부 거주지역에 대해 편견을 조장했다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심각한 인권침해다. 이 사실만큼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내 의도는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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