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12.3. 내란 사태

극우화를 보는 눈

박찬운 교수 2025. 3. 4. 04:52

극우화를 보는 눈

 
우리 사회에 극우세력이 점점 많아지는 원인에 대해 몇몇 분들이 사회심리학의 ‘고독’을 지목합니다.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보편적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초 창궐한 나치즘이나 파시즘도 인간의 고독에서 원인을 찾은 학자가 많습니다. 한나 아렌트에리히 프롬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지요.
 
이들은 인간이 고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전체주의라는 악마가 손을 내밀면,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손을 잡는다고 했습니다(이와 관련한 고전이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가 아주 소상하게 내용을 분석해 글을 쓴 게 있습니다. 인권고전강독 12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고독한 군중 시간이 있을 때 보시지요.). 지금 전 세계 극우화의 배경은 바로 이런 고독이 또다시 글로벌한 차원에서 인류의 삶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의 노인들을 봅시다. 노인이 되면 점점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됩니다. 가까웠던 친구도 멀어지고 가족마저 멀어집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종로 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고 탑골공원 담장 가에 수백 명의 노인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젊은이(특히 남성)를 봅시다. 대학을 나와도 일할 곳이 없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언제 짤릴 지 모릅니다. 안정된 직장을 갖는 꿈은 이제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오랜 기간 준비해 사회에 나왔건만 불안한 삶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엔 남성인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던 여성이 이젠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이럴 때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매일 같이 전화를 해주고 밥을 챙겨줍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과거엔 내 마음속에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었던 교회였는데, 그 교회가 나에게 다정하게 손짓을 합니다. 목사님이 내 손을 잡아주며 형제여! 하며 기도를 해줍니다. 눈물이 나옵니다. 목사님 말씀이라면 이제 섶을 지고 불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기성의 질서를 부인하는 정치 단체가 나타나 내 눈을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독해진 것은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인, 중국인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고독해진 것은 창조의 질서를 해치는 성소수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도하다고 하면서 이제는 역차별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세상을 바꿔 제대로 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합니다. 이들의 말이 불안한 노인의, 미래가 없는 젊은이의 마음을 확 잡아줍니다.
 
이런 것이 극우의 메커니즘이 아닐까요, 이런 분위기가 내란 사태를 이용해 세를 결집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고독이 극우세력을 만드는 강력한 원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고독을 컨트롤 할 수 없는 무능함입니다.
 
고독하다고 해서 모두가 극우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감을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살아갑니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대화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도 나이를 먹으니 매일 매일의 삶이 고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극우세력이 되진 않을 겁니다. 저는 적어도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극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노인의 삶에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젊은이의 불안한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 땅에 사는 모든 사회 구성원과 공존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연대의 가치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노인과 젊은이에게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줘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 맞는 복지정책을 우리가 심도 있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2025.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