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무슨 일을 하는가
방학 중이다 보니 생각할 여유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집 서재나 학교 연구실, 두 곳 중 한 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요즘은 다음 연구 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논문 편수나 채우는 연구는 하지 않습니다. 인권 발전에 꼭 필요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좋은 주제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 논문과 인터넷 자료 등을 읽으면서 제가 도전해야 할 연구 주제를 잡으려 하지만 잘 잡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제가 꼭 해야 할 연구 주제,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논문을 쓴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지독한 정성이 없으면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애석한 것은 그렇게 써도 그것을 읽는 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 말대로 논문은 쓴 사람과 심사하는 사람 정도가 읽는다고 합니다. 그런 논문을 왜 쓰는지, 그것을 쓴다고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가끔 회의가 듭니다. 그럼에도 학자는 논문을 써야 합니다. 불과 몇 사람이 보는 글이라도 그 글에 어떤 보석 같은 진실이 들어 있다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제 논문이 그런 글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저는 인권위를 나온 다음 인권위와 관련해 두 개의 논문을 썼습니다. 제가 요즘 집중하는 것은 인권위의 업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이론적 기초를 쌓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인권위 조사절차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위한 인권위법 개정안을 만들었고, 다음으로 인권위 진정절차의 조사와 판단의 이론적 틀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인권위 재직 기간 중 꾸준히 생각했던 주제였습니다. 두 개의 논문으로 인권위의 조사기능과 관련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하건대 이 두 논문은 인권위가 향후 조사기능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연구 성과로 인정될 것이라 믿습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세상에 도움이 되는 논문을 쓴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논문을 써도 그것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 이런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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