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을 기대한다
어젯밤 속보로 뜬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 국민이 들뜬 모양이다. 뉴스도 SNS도 이 소식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페북에 들어와 보니 페친 들의 축하 글이 피드 전체를 채우고 있다. 진짜 축하할 일이다. 나도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학교에 오면서 2호선 전철로 한강을 넘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결이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망막에 맺힌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강은 어떻게 노벨 위원회의 심사과정을 통과해 수상자로 선정되었을까? 기적이 일어난 것인가?
학교 선생으로서 부끄런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기말이 되면 나도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 평가를 하지만, 논술 문제를 채점할 때는 항상 공정성과 객관성에 자신이 없다. 잘 쓴 답안을 A, 못 쓴 답안은 B로만 채점을 한다면 그런대로 결과는 공정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쓴 답안 중에서 A+, A0, A-를 고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다. 우선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답안을 꼼꼼히 읽을 자신이 없다. 남의 글을 자세히 읽는다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는가. 더군다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글깨나 쓰는 친구들의 답안을 읽으면서 공정하게 우열을 가리는 일은 정말로 할 짓이 못 된다. 내가 그나마 학생들의 불만을 낮추기 위해 하는 일이란 이름을 모른 채 채점을 한다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로 A나 B를 주어야 할 때 만일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면 자칫 불공정한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평가를 받는 학생들 중에서 혹시나 본인은 잘 썼는데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부디 나를 욕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가 그날 운이 없었기 때문이니 조상 탓을 하는 게 낫다.
학교 선생이 지식의 알고 모름을 평가할 때도 이리 어려운데 문학작품을 읽고 거기에서 단 한명을 뽑아 상을 주는 일은 어떨까? 나로선 상상이 안 가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내게 그런 평가의 기회를 의뢰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나는 도저히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없다고.
노벨 문학상의 경우라고 다를까? 이 영역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을 썼으니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하는 수상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수상은 그저 열심히 문학작품을 써오면서 독자와 문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들에게 어느 날 벼락처럼 찾아오는 행운의 순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서구 문화권에서 활동하지 않는 작가들에겐 더욱 그렇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120여 명의 면면을 보라. 압도적 다수가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배경으로 한 작가들이다. 아시아권에선 고작 5명에 불과(인도, 중국 2명, 일본 2명) 했다. 더욱 여성은 없었다. 매년 전 세계 작가 수백 명이 추천되고, 그중에서 몇 차례에 걸친 후보자 조정작업을 거쳐 마지막 5-6명이 남는다고 하는데, 이 과정이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는 아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우수한 문학작품이라도 서구사회에 노출이 안 된다면 아예 처음부터 추천될 리가 없고,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작가라 할지라도 심사위가 후보자의 작품을 모두 꼼꼼하게 읽고 문학성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긴 하지만 나이 60이 넘도록 문학작품을 많이 읽지 못했다. 50대 중반에 들어서서 가끔 문학작품(주로 소설)을 접하는데, 그것을 통해 내 노년은 문학이 내 친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그저 어떤 특정 사실을 알고, 그 논리적 전개를 이해하는 지식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내 태도는 그저 소박하다. 나는 인간의 고뇌와 삶의 애환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글을 좋아한다.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본능을 자극하고 내 한계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더욱 좋다. 이런 작품이라면 무슨 문학상의 수상작이 아니라도 좋다. 어느 무명의 작가가 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오늘 시내의 대형서점에 가면 한강의 책이 문 앞에서부터 산처럼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당분간 그런 열기는 어쩔 수 없기에 책을 팔아야 하는 서점 입장에선 당연한 마켓팅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분위기가 어떤 한 작가의 성공으로만 치부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의 성공을 아낌없이 축하해주면서도 우리 문학이 더욱 성숙한 길을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한강 작가도 당연히 그것을 바랄 것이다.
한강이 아무도 모르게 필명을 두만강으로 바꿔 무명의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해도 오로지 그 작품성 때문에 여러 독자들로부터 상찬을 받는 진정한 문학의 시대는 과연 불가능한가. 나는 그날을 고대한다.
상과 인연이 없는 작가들이여 힘을 내라!
(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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