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폭싹 속았수다'
나도 틈틈이 요즘 인기가 있다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다. 오늘까지 6회분을 보았다. 주인공인 애순, 관식 부부의 나이를 보니 나보다 대략 10여 년 위니 그들이 살아온 시기를 대부분 나도 거쳐왔다. 정령 극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 나는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아 여기까지 왔는가!
극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가질 거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저것이 바로 나의 삶이었지, 저것이 바로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었지 하면서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그러나 극을 보면서 또 다른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 나에게도 저런 부모가 있었다면... 저 집은 가난했지만 그래도 행복하구나, 나도 저런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러니 모든 눈물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같은 감정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상대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조금 이해한다면 그에게 다른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나는 70년대 초 시골에서 서울 청계천 변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만 해도 청계천 변에는 수천 수만의 판자촌 주민들이 살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가난해도 그런대로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그 이상의 불행을 겪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두 사람은 과거를 생각하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시간이 많은 것을 치유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다. 시간만큼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없다.
파일함을 뒤져보니 과거 써 놓은 ‘시 아닌 시’가 몇 편 있다. 그것들을 쓴 것도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주말 아침 두 편을 공개한다. 이번 주말 틈틈이 ‘폭싹 속았수다‘ 나머지를 끝낼 예정이다.
나의 사근동 시절(1)
-소년의 눈물-
1973년 10월 10일
어머니 손에 끌려
사근초등학교 5학년 1반
문턱을 넘었다
이OO 선생님
굵은 검은 뿔테 안경 너머
번뜩이는 눈매에서 서울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첫날, 배우지도 않은 산수시험
형편없는 점수
짝꿍 김OO의 냉소 짓는 얼굴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 왈, 너 오늘 처음 왔지
그래 오늘은 봐 주마
60점 아래 다른 친구들
손바닥 얼얼토록 맞는 모습에서
앞으로 닥칠 비정한 서울이 보였다
셋방살이 좁은 방
밤 10시 일일 연속극이 끝나면
가족들은 일찍 잠이 들었다
집안의 희망 그 때서야 책장을 넘겼다
소년의 눈가에는
항상 우수가 넘쳤다
80명이 넘는 동급생들
그 중에는 소년보다 훨씬 우울한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동급생들과
쌀 1말, 라면 2박스 어깨에 메고
청계천 변 사람 살 곳 아닌 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돌아오는 길 우리 모두는 울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생일 날 케이크 한 쪽 먹어볼 신세는 되겠지
꼬박 30년이 지난 오늘
아련한 추억의 한 가닥을 잡아당기니
오랜 세월 고였던 소년의 눈물은
메말라 있던 나의 가슴을 타고 한 없이
흘러만 간다
(2004년 어느 날)
.
나의 사근동 시절(2)
-튼튼한 다리를 얻은 사연-
사근학교 졸업하고
왕십리 중앙시장
성동중학에 입학하였다
사근동에서 중앙시장까지
꽤나 먼 길이었다
77번 통학버스는 매번 타지 못했다
만원버스라도 그것 타면 빨리 가고
예쁜 차장 언니 보아 좋았건만
주머니는 늘상 비어 있었다
대신
나와 김OO은 빨리 걷기 시합을 하였다
둘은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어제는 네가 1등
오늘은 내가 1등
나는 젊은 시절 운동을 못했다
군대 갔더니 별명이 고문관이었다
남들 일어설 때 앉아 있고
앉아야 할 때 일어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자신있었다
걷는 것
200킬로 행군 있었을 때
동료들 대부분은 낙오병이었다
그러나 나는 씩씩했다
드디어 고문관에서 해방되었다
장년이 된 지금
여전히 두 다리는 튼튼하다
산행을 할 때도 어려운 줄 모르고
언젠가는 외국에서 있었던 걷기 행사에도 나가
국위 선양을 하였다
사근동 시절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2004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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