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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박찬운 교수 2023. 10. 29. 06:13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부쳐-

 

 
세월호 참사도 이태원 참사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문명국가에서 중인환시리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분명히 그것은 불가항력의 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재였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 책임만 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더 기가 막히고 더 참담한 것은 참사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사정이다. 아무리 민주국가라 해도, 아무리 선진사회라 해도 사고는 있을 수 있고, 때론 인재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당연히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정 책임자(대통령)는 참사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이 있다. 두 말 할 것 없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 참사가 어떤 연유로 일어났는지 철저히 조사해 책임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성의 있는 예우(법적 배상)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사태와 관련된 책임자들의 사퇴나 문책 인사는 필수적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자 예의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대한민국 헌법 한 조문만 같이 읽어보자.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문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존립이유를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우리들의 불가침의 인권(가령 생명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결단코 그런 국가는 나의 국가가 아니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공통점은 사고 이후 국가 존립이유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국가의 기본을 잊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국정 책임자의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고,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국가가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책임 회피라는 점에서는 이태원은 세월호를 능가한다. 159명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는데도, 이제껏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지겠다는 립서비스조차 들리지 않는다. 책임을 오로지 사법적 책임으로만 국한시켜 지리한 법정 공방만 할 뿐이다. 무도한 정권이 여럿 있었지만 이 정권은 그 정도에서 이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박근혜 정권조차 이주영 해수부 장관이 수염을 기른 채 한동안 팽목항을 지키다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는가. 탄핵사태까지 갔다가 아직도 장관직을 수행하는 이상민 행자부장관의 건재는 역시 이 정권의 남다른 면모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행자부장관을 비롯해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과하고 사의를 표명하는 게 그렇게도 어렵단 말인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대한민국을 지금보다 훨씬 다르게 만들 수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그리도 오기를 부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상식을 갖고 일하기만 해도 지지율은 30%가 아니라 적어도 40, 50%를 얻을 터인데, 그것이 그렇게도 어렵단 말인가.

창졸간 유명을 달리한 159명 원혼 앞에 이 가을에 핀 하얀 국화 한 다발을 바치며 명복을 빈다.
(2023.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