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다.
사람은 희망 없이 살 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선 일부로라도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권영준 대법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기에 해당합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분명히 그의 행위는 서울대법(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영리업무이고, 변호사법에 따른 비변호사의 유상의 법률사무였음에도 국회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일반적인 지위도 아니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임무를 갖는 대법관에게 그런 중대한 하자가 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정치적 타협을 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 받을 일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이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사람과 기관의 침묵이었습니다. 동료 교수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지켜만 보았습니다. 가장 큰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변협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사실상 직역침탈을 당한 변호사들이 당연히 들고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대학은 교수들이 어디 나가서 10만 원만 받아도 김영란법에 의해 신고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정작 이 사건에선 말이 없었습니다. 누구에겐 10여 년 전 자식 입시와 관련된 문제를 들추어 내 멸문지화를 만들어냈던 검찰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라면 당사자 집 앞까지 찾아가 장사진을 치며 보도에 열을 올리던 언론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 부르겠습니다. 카르텔은 이런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저로서는, 아니 우리로서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적지 않은 소득입니다. 사실 권대법관의 경우는 무난하게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칠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습니다. 설혹 서울대 교수가 의견서를 써주고 돈을 받았다고 해도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게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뚜겅을 열어보니 그가 국회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청문보고서는 지연되었고 본인은 자신이 번 돈을 사회환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들도 분명 문제는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물난리에 정쟁을 하는 모습이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계산이 섰던지 막판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당사자로선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된 것은 페북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여론 형성이었습니다.
페북을 통해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여기에 존경하는 몇 분 동료 교수님들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일부 진보 언론이 받아 기사화했습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일부 의원이 이것을 토대로 청문절차에서 문제 제기를 했고 그것이 결국 국회 동의를 쉽지 않은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급기야는 일부 보수 언론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하고 사설까지 썼습니다. 이런 여론 형성이 바로 이 공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담벼락에 몇 글자 끄적인 것이 이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 아닙니까. 제가 이래서 이곳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곳이 요즘 많이 변했다는 말이 많습니다. 이런 글을 써도 저의 페친이나 팔로워들이 많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이곳을 떠냐야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일을 경험하면 적어도 당분간 굳건히 이곳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하면 강합니다. 특히 저 같은 소위 인플루언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일으킨 호수의 잔물결 하나는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갑니다. 그러니 실망만 하지 않고 또 다시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실망과 원망만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호소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연대에 더 큰 기대를 걸겠습니다. 정치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일입니다. 주인 행세를 더욱 거세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것만이 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 진짜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이제 권대법관에게 법조 선배로서 한마디 말합니다. 이제 대법관으로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던 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직무로서 보여주십시오. 단순히 최고의 이론가로 만족하지 말고 그 능력을 선한 일에 씀으로써 역사에 남는 대법관의 꿈을 꾸십시오. 저는 당신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벗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이 그동안 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최고의 사회 환원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계 당국과 정치권에 호소합니다. 이번 일은 제가 몇 번이나 경고했듯이 대학사회에 적잖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대학교수들이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 논의를 서둘러 주십시오. 교수가 해서는 안되는 영리업무의 기준을 세워 다시는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2023. 7. 20)
'나의 주장 >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진짜 망해 가는 나라를 원합니까, ‘되는 나라’를 원합니까. (0) | 2023.09.12 |
---|---|
역사와 이념의 세습화와 그 한계 (0) | 2023.08.27 |
권영준 대법관 후보가 국회 동의를 받을 경우의 후과에 대하여 (0) | 2023.07.20 |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의 법령 위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 (0) | 2023.07.13 |
저도 앞으로 돈 좀 벌어야겠습니다 (0) | 2023.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