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대법원 구성 너무 심각하다, 이대로 둘 수 없다

박찬운 교수 2015. 9. 26. 22:11

[대법원 구성 너무 심각하다, 이대로 둘 수 없다!]


나는 요즘 대법원이 우리 사회에 도대체 왜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최고사법기관의 최소한의 기능은 국민의 인권옹호가 아닌가. 또한 대법원은 사회분쟁과 갈등의 최종적 해결기관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대법원의 그런 기능은 파탄상태에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사건에서 대법원은 수많은 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했다. 한 사업장에서 노사갈등이 발생하여 무려 25명이나 되는 무고한 노동자들을 자살로 몰고 간 사건에서 대법원은 결국 자본의 편을 들었다.


이번에 선고된 KTX 승무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거의 10년이나 끌어온 노동사건에서 원심 판결마저 뒤집고 끝내 노동자들을 외면했다. 이제 그들 노동자는 1인당 1억 원 이상의 빚을 지고 거리로 내몰릴 상황이다.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하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대법원 구성의 편향성에 있다. 지금 대법원의 구성은 천편일률적으로 보수 일색이다. 법원 내에서는 뛰어난 법관으로 소문이 났을지는 모르지만 그들 대법관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 남성중심, 강자중심의 사고를 가진 법관들일 뿐이다. 대법원에, 이런 대법관들이 포진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최종갈등조정 기능이나 소수자 약자에 대한 인권옹호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대법원에서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결단코 대법원 구성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의 시대적 요구를 이해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높은 양식 있는 법률가들이 그 직을 맡도록 해야 한다.


헌법상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게 되어 있다. 이런 제도 하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 헌법은 사실 진보 대통령이 재임해 있는 기간에는 진보적 대법관이, 보수 대통령이 재임해 있는 동안에는 보수적 대법관이 임명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가 아닌 이상 한 대통령이 사법부의 구성을 전횡한다는 것은 대통령제의 취지에 맞는 것이 아니다. 권력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대통령제 하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권에서 오는 독립성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 대법원 구성은 거의 절망적 상황이다. 87년 헌법이 개정되고 나서 30여 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근본적으로 파탄 내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한 대통령이 대법원 구성을 전횡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아래 분석을 보자. 이것은 내가 현재 14명의 대법관 임기를 조사해서 그 문제점과 향후 대법관 임명의 문제점을 예상해 본 것이다.


1. 현재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대법원 보수화의 근본적 이유이다. 대법관들의 사고는 결코 그들의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넘지 못한다.


2. 박근혜 대통령은 2018년 2월까지 임기 동안 14명의 대법관 중 10명을 임명하게 된다. 박대통령은 복 받은 대통령이다! 대법원을 완벽하게 자신의 수중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3. 만일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는 경우 차기 대통령은 임기(2018.2-2023. 2) 중 6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대법원장의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현 대법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2017년 9월에 끝나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퇴임하기 때문이다. 차기 정권을 야당이 잡는다고 해도 차기 대통령은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은 박근혜 정권에 비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 변하기는 글렀다!


4. 더 재미있는 것은 차차기 대통령(2023. 2-2028.2 )의 경우 다시 사법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때 대통령은 대법원장을 비롯해 임기 중 무려 10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만일 그 때 다시 정권이 바뀌는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사법부는 대법원 구성 문제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헌법이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대법원장 및 대법관의 임명이 대통령의 권한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14명의 대법관 중 절대 다수를 한 대통령이 일시에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만들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제재판소의 경우는 사실 우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에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재판관 임기를 똑 같이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경우 재판관 18명의 임기는 9년이지만 첫 개원 당시에는 규정에 의해 임기 3년, 6년, 9년의 재판관을 선출했다. 심지 뽑기를 통해 임기가 정해졌지만 그런 이유로 일시에 여러 명의 재판관이 임명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우리 헌법도 이런 제도를 도입했더라면(처음 개원 시 3년 및 6년 임기의 대법관) 어떤 경우라도 지금과 같이 한 대통령이 대법원 구성원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법원 구성을 구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 시에 반드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꿈틀대고 있는 개헌 논의에서 이 문제가 꼭 중요 어젠다가 되길 바란다.(2015.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