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그리고 박상옥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부적합한 이유>
방금 전 한강을 넘어왔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서울이란 거대도시, 이곳에서 나는 40년을 넘게 살았다. 그럼에도 서울이란 곳은 여전히 내겐 낯선 도시다. 잠시 눈을 감았다. 웬지 오늘은 옛날 생각이 발길을 잡는다.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가을의 일이다. 나는 변호사 초년생으로 그날 밤 한참 선배인 C 변호사님과 연수원 동기인 Y 변호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말. “박 변호사, 변협회장 박승서 변호사가 강민창을 변호한 것 알아?” 금새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고요. 변협회장이 박종철군 사건 은폐주모자인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변호했다고요?”
이 대화는 나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였다. 그 다음날로 나는 박승서 변협회장의 퇴진 운동을 주도했다. 직접 퇴진 성명문을 썼고, 몇 몇 동기들과 힘을 합쳐 일일이 전화를 돌려 전국 변호사들을 규합했다. 108명이 동참했다(참고로 당시 전국 변호사 수는 2천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었음).
우리들 성명 참여자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인권단체로서의 변협의 위상에 비추어 그 수장이란 사람이 당시 최대의 인권유린사건이라 불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주모자를 변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다른 변호사라면 달리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라도 변호 받지 못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존재는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 퇴진 운동은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 몇 달 후 있은 차기 변협회장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와 젊은 변호사들의 여망은 변협회장은 불의한 정권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내걸고 그것에 걸 맞는 변호사에게 표를 주자고 호소했다.
우리들의 지지에 힘입어, 김홍수 변호사라고 하는 당시로선 무명의 변호사가, 차기 변협회장에 당선되었다. 사실 우리도 그분에 대해선 잘 몰랐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 분이 5.16 군사 쿠데타 시절 서울지검 검사로서 군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사표를 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퇴진운동을 계기로 민변(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합류했다. 1991년 초의 일이다. 당시 민변은 회원 50여명의 단출한 단체였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민변 회원 수는 1천명을 돌파했다. 격세지감이다. 민변 창립이 올해로 27년이다. 그 기간 민변이 무엇을 했는지는 후에 기회를 보아 설명하겠지만, 민변 없는 한국의 민주주의, 그것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며칠 전부터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문제로 언론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에게 묻는다면 어떤 말을 해줄까? 단연코 불가다. 그는 대법관이 될 수 없다. 그 흠결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 마음속에는 도덕률을 외치는 사람’을 대법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런 도덕주의자를 경계한다. 지금 세상은 도덕주의자가 소리를 높일 시대가 아니다.
나는 가급적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높은 공직에 가는 사람이라도, 익명의 도시 서울에서 마음껏 사적 자유를 누리길, 나는 희망한다. 따라서 나는 박상옥 후보자의 그 어떤 사적 문제도 건드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의 담당검사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인 공적 흠결이다. 그것은 그가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ㅡ어딜 보면 그런 말이 있다. 그는 훌륭한 인격자라고. 나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ㅡ그것만으로도 대법관에 오를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적 사건이다. 그 사건은 이한열 열사의 사망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발전하는 단초를 연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87년의 새 헌법도, 오늘의 우리의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ㅡ그게 지금 위기다ㅡ은 모두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이름도 빛도 없는 열사들의 피의 대가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와 더불어 시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헌재는 특수한 사건에서만 위헌여부를 판단하지만 대법원은 우리들의 모든 일상과 관련된 사건의 최종심이다. 사실 그 영향력은 헌재와 비교가 안 되는 중대한 인권기관이다. 그런 기관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권유린사건의 은폐와 관련된 담당검사가, 세월이 흘렀다 하여 대법관으로 금의환양한다? 이건 지하의 열사들이 관을 뚫고 나올 일이다.
박상옥 후보자가 지금 후보자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과욕이다. 만일 그가 사퇴를 거부한다면 역사는 그를 후안무치한 법률가, 출세를 위해 고귀한 역사를 팔아버린 인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1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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