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기쁨

소소한 행복 -어느 괴짜식당 이야기-

박찬운 교수 2017. 2. 5. 06:16

소소한 행복

-어느 괴짜식당 이야기-


 

런던에서 돌아 온 이후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밥을 먹을 때 밥 자체의 맛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동안 밥맛은 밥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입에 맞는 반찬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반찬이 변변치 않을 때는 밥맛이 없다며 투정을 부렸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어보니 런던의 밥과는 차이가 크다. 런던의 쌀은 국적불명의 쌀로 어떻게 밥을 지어도 밥맛이 나지 않았다. 한국의 쌀은 그렇지 않다. 밥을 잘 한 다음 그 밥 한 술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보았더니 단물이 입에 뱄다. , 밥이 달구나!

 


내가 그동안 생각 못한 것이 이런 것이다. 밥을 꼭꼭 씹어만 먹어도 밥맛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주위를 돌아보니 의외로 그런 게 많다. 삶을 씹어보니 단물이 나는 게 꽤 있더란 말이다. 오늘 그런 것 중 하나를 이야기 해 보자.

 


연구실을 나와 성동교를 건너 뚝섬역 부근을 지났다. 좀 걸어서 서울숲 역까지 가서 분당선을 이용해 집으로 오기 위함이었다. 마침 저녁 밥 때가 되었고 집에 들어가도 혼밥을 해야 할 상황이라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얼마 전 소개한 성수동 콩나물국밥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식당이다. 테이블 대여섯 개가 고작인 이 식당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멋있게 수염을 기른 아저씨다. 그래보았자 나보다는 십 여 년 아래일 텐 데 인상은 나이와 관계없이 포스가 넘친다. 아저씨는 언제나 주방에서 묵묵히 음식만 만든다.

 


식당 이름은 퍼니 주 키친’. 식당 이름치고는 꽤 재미있다. 분명 그 이름에 어떤 사연이 있을 텐 데, 아직 물어보진 못했다. 다만 이 식당은 그 이름만큼이나 웃긴다. 한마디로 괴짜식당이다.

 


내가 이 집을 자주 찾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 맛 때문이다. 한국 고유의 맛을 즐기기에는 그 앞집 콩나물국밥집이 제격이지만 아무리 맛있는 국밥이라도 매일같이 먹을 순 없다. 그런 음식이 식상할 때는 다른 것을 먹어줘야 하는 데, 그 때 먹을 만한 것으로 이집 음식만한 게 없다. 이집에서 제공하는 요리는 돈까스와 카레 그리고 이 둘을 변형한 몇 개의 메뉴다.

 


내가 이들 메뉴 전부에 대해 심플하게 평을 한다면,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것으로 족하다. 엄지 척! 그 맛의 수준은 서울의 어느 전문 돈까스 식당보다 낫다. 명동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돈까스와 카레를 먹어 보았지만 이 집만큼 맛깔스러운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돈까스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특유의 고소한 튀김 맛에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맛이 더해져 맛의 예술을 이룬다.

 


요즘엔 맛있는 식당은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입을 통해서, SNS을 통해서 소문은 나는 법이다. 그래서 그런지 성수동 후미진 곳에 있는 이 조그만 식당은 언제나 만원이다. 특히 점심 때 가서 이 집 음식을 맛보는 날은 운수좋은 날이다. 내가 지난 두어 해 동안 점심시간에 이 집을 찾은 게 수없이 많지만 입장에 성공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집의 특징 중 하나는 허구한 날 쉬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유별난 주인 때문인지, 휴가철이 아닌 때도, 어느 때는 일주일 내내 문을 닫을 때도 있다. 이런 식당이라면 일찌감치 손님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문을 닫았을 법하다. 그럼에도 이 집은 문만 열면 문전성시다. 그 이유?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맛 때문이다. 맛 집은 손님이 왕이 아니라 식당주인이 왕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집에 들어가면 벽에 붙어 있는 글귀다. 이런 글귀가 손님의 눈을 사로잡는다.

 

저희 퍼니주 키친은 맛 집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기다렸다가 드실 만큼 맛있지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동네 평범한 작은 식당일뿐입니다.”

 


이 식당에서 밥을 먹은 손님치고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저 말은 식당주인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의 표현이다. 손님들이여, 올 테면 오시고 갈 테면 가시라. 나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만들 테니...

 


이런 음식점엘 가 본 일이 있는가? 한 번 가보시라.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 포스팅 때문에 앞으로 내가 이 집을 이용하는 게 더 어려워지지나 않을까? 자못 걱정이다. 독자들이여, 이 집 이용하시되, 내가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빼앗아 가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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