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신 서유견문

신 서유견문(4)(워싱턴 디시를 활보하다)

박찬운 교수 2015. 9. 30. 06:30

신 서유견문(4)

워싱턴 디시를 활보하다

 

며칠 전 신 서유견문(1)을 포스팅하면서 19959월 뉴욕이야기를 포스팅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전 날 갔던 워싱턴 디시(이하 디시)에 관한 것입니다. 20년 전 제가 디시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일기를 한번 읽어 보십시오. 이 글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행 중 메모한 것을 기초로 작성된 것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아주 피상적입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워싱턴 디시에 가서 많은 것을 보았을 텐데, 써놓은 것은, 고작 교통체증, 주차난, 알링턴 국립묘지, 디시의 도시배치 정도입니다. 간단히 인상 깊었던 것만 썼던 모양인데, 지금 쓰라고 하면 이렇게 쓰진 않을 겁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어디를 가든 공부를 하고 갑니다. 호텔 방에서 열심히 자료를 읽습니다. 요즘엔 현지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수많은 자료를 검색해 정보를 찾아내 읽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날 거리를 활보하고 돌아와 메모를 남깁니다. 그렇게 해서 제 문명기행기[<문명과의 대화>(네잎 클로버)]가 작성된 것입니다.


20년 전 제겐 자질은 있었지만 공부는 저 밑바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몇 부분은 지금 읽어 보아도 괜찮습니다. 특히 워싱턴 디시를 조망하면서 도시배치의 의미를 생각해 본 대목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제가 써 놓은 일기에 최근 사진을 구해 편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허경진 역), 서유견문 원본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경영한 일본 출판사 교순사에서 출판되었다. 국한문 혼용체인데 오늘 날 사람들이 그냥 읽기 어렵다. 현재 여러 번역본이 나온 상태다.


제 일기를 보기 전에 우선 서유견문의 원 저자 유길준이 이 워싱턴 디시를 어떻게 묘사해 놓았는지 잠시 읽어 보시지요. 유길준은 워싱턴을 돌아 본 다음 그곳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미국의 서울이다. 이 나라를 처음 세운 대통령 워싱턴의 성을 따라 서울의 이름을 삼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의 의로움을 기린 것이다. 이곳은 포토맥 강과 애너코스티아 강의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요충에 있다. 질펀히 흐르는 강물은 거울 펼쳐 놓은 듯하고, 맑고 빼어난 봉우리는 그림 폭을 펼친 듯하여,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답다. 관청과 민가의 건축과 배치가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고 규모를 반드시 지켜서, 유리와 울긋불긋한 빛이 영롱하게 비친다. 사이사이에 공원을 만들어 기이한 꽃과 풀들을 심어 기르고, 사방으로 통하는 거리는 아스팔트로 포장하였다. 길 양옆에는 나무가 나란히 줄 지었는데, 큰길의 너비가 160 척이 되는 곳도 있다. 차와 말이 그치지 않고 화물이 쌓여 있어, 그 번화한 모습은 참으로 큰 나라의 서울답다. 그러나 주민은 15만에 지나지 않는다.”(서유견문, 허경진역, 서해문집, 512)


유길준은 워싱턴 디시에 대해 이렇게 개괄적 설명을 한 다음, 캐피톨(의사당), 백악관, 백악관 앞의 잭슨 동상, 워싱턴 모뉴멘트, 포교원(Nationla Historic Wax Museum)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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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워싱턴 디시를 누비고 다닌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쳤다. 말이 나왔으니 미국 아침식사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겠다. 미국인들은 보통 아침을 굶거나 간단하게 한다고 들었지만 호텔 아침메뉴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고작 우유, 도넛, 주스, 커피가 전부다.


일본에 가서도 아침 식사메뉴가 부실하다고 불평했는데 미국과 비교하니 일본은 진수성찬이다. 중국과 비교하면 미국호텔 아침식사는 개밥보다 못하다. 자고로 아침식사를 중시하는 한국인들, 특히 나같은 사람에게는 미국호텔의 아침메뉴는 고통이다.


워싱턴 디시로 들어가는 길은 듣던 대로 트래픽이 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혼잡과는 비교가 안 된다. 막히는 것 같으면서도 서서히 움직이더니 곧 뚫리고 말았다. 포토맥 강을 건너기 전에 보니 그 별 모양의 펜타곤이 보인다. 근처의 거대한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다. 저런 곳에 주차하면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뚱뚱한 미국 사람 하나가 힘겹게 사무실을 향해 걷는다. 조금 처량해 보인다.


알링턴 국립묘지를 뒤로하고 포토맥 강을 가로지르는 알링턴 브리지를 건넜다. 출근시간인데도 조깅하는 시민들 모습을 보니 디시가 분주한 도시만은 아닌 모양이다. 멀리 하얀색의 링컨 메모리얼과 우뚝 솟은 워싱턴 모뉴먼트(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디시의 중심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과 고대 그리스 양식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 관청가가 눈에 들어온다. 캐피톨(국회의사당), 의회도서관, 연방대법원, 농무성을 비롯한 각 행정부처 청사, 그리고 백악관 등등....



사진 윗쪽의 흰 돔이 있는 건물이 캐피톨(의사당), 그 앞으로 긴 공간이 몰, 중앙의 오벨리스크가 워싱턴 모뉴먼트, 그리고 아랫쪽 흰 건물이 링컨 메모리얼이다.(사진 위키피디아)


차를 세우고 좀 더 자세히 도시를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 도로변 주차장은 거의 모두가 관청과 관련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시를 처음 찾은 관광객들이 주차공간을 찾는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농담이지만 창길은 내게 빨리 출세를 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래서 다음에 미국 올 때는 최소한 국무성 초청이라도 받아오란다. 그래서 친구에게 약속하길 다음에 디시에 올 때는 '이렇게는 안 온다. 반드시 국무성이든 어떤 관청이든 나를 초대하지 않으면 안 오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좀 찝질했다.


미국에 와보니 이 땅에서 대우 받고 사는 게 무엇일지 알 것 같다. 우리 교민들이 백만이 넘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류사회와는 먼 소수민족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교민이 주류사회에 한 발이라도 나가보려면 자식들 교육시키는 방법밖엔 없을 것이다. 미국에 온 부모들이 왜 자식들을 그토록 닦달하면서 교육시키려는 지 그 이유를 알겠다. 사람은 설움 속에선 못 사는 법이다. 그것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저 욕망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내가 만일 미국사회에서 산다고 해도, 그 꿈, 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는 꿈을 안고 살 것이다. 어떤 백인도 무시하지 못하는 강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디시 내 주차를 포기했다. 차는 다시 알링턴 브리지를 넘어 알링턴 국립묘지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 탐방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사진 위키피디아)


우리는 알링턴에서 3달러짜리 셔틀버스를 이용해 국립묘지 구석구석을 보기로 했다. 동작동 국립묘지도 이렇게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는데 이국땅의 국립묘지를 샅샅이 관찰하니 조금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이곳이 처음이란다.


알링턴은 남북전쟁 중에 군인들의 묘지로 만들어졌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남북전쟁 시 남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Lee 장군의 처가가 저택을 가지고 있던 곳이라고 한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묘소를 많이 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존 에프 케네디의 꺼지지 않는 무덤뿐이었다(태프트 대통령도 여기에 있다는 건 뒤에 알았다).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죽은 다음 고향에 묻힌다고 하는데, 케네디는 생후 몇 주일 만에 죽은 아들과 얼마 전 죽은 아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와 나란히 묻혀있다.


케네디 대통령 묘지, 그 옆으로 부인 재클린과 아들이 있다.(사진 위키피디아)


케네디 가족 무덤은 알링턴의 모든 묘지 중에서 가장 돋보였고, 가장 화려했다. 하지만 그 규모는 동작동 국립묘지의 대한민국 대통령 묘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사진으로 본 태프트의 묘소는 케네디의 몇 분의 1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그런 것이다. 죽은 다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그의 이름이지 묘지가 아니다.


태프트 대통령 묘지, 그는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통령 퇴직 후 대법원장이 된 사람이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상호지위를 인정한 태프트-가쓰라 조약(1905)에서 나오는 그 태프트이다.(사진 위키피디아)


미국에는 케네디 이름을 딴 공공건축물이 많다. 케네디 기념관, 케네디 공항, 케네디 스쿨 등등. 짧게 살았지만 그의 위대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인들의 케네디에 대한 기억은 그만큼 선명하고 각별하다.


알링턴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들이다. 미국의 영화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살면서 국가의 긍지를 마음껏 느껴본 사람들이 분명하리라.


알링턴을 둘러보고 다시 차를 몰아 알링턴 브리지를 넘어 관청가로 들어섰다. 헤매고 헤매다가 천행으로 포토맥 강가에서 주차 공간을 발견했다. 포토맥 강은 그 폭이 한강의 절반정도이지만 수량은 풍부하다. 강물의 물살도 완만하여 그것만 보고 있어도 풍요로운 디시가 느껴진다.


우리는 강가 잔디밭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 폭의 그림이다. 후일 알았지만 이 그림 같은 광경은 그저 기억으로만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진기가 문제가 있었던지 필름을 빛에 노출시켜 완전히 버리고 만 것이다. 친구 창길이 여행기간 중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워싱턴 디시를 흐르는 포토맥 강, 한강보다 폭은 절반도 안 되지만 수량은 풍부하다.(사진 위키피디아)


워싱턴 디시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도시배치였다. 원래 디시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건축가 란판트에게 지시하여 미국 공병대를 동원하여 만든 계획도시다. 그런데 이때 제일 논란이 되었던 게 관청배치였다고 한다. 특히 캐피톨 즉, 국회의사당의 위치가 문제였다. 결국 캐피톨은 지금의 캐피톨 힐에, 여러 관청들은 그 주변에 배치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캐피톨ㅡ몰ㅡ워싱톤 모뉴멘트ㅡ링컨 메모리얼이 일직선 상에 있다.(사진 위키피디아)


캐피톨-몰-워싱턴 모뉴멘트-링컨 메모리얼이 보이고 그 뒤로 알링런 브리지 그리고 그 뒤로 알링턴 국립묘지가 보인다.(사진 위키피디아)


내 눈에 들어온 디시의 도시배치는 캐피톨-워싱턴모뉴멘트-링컨 메모리얼-알링턴 브리지-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선이었다. 이러한 배치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이것은 아닐까? 미국 시민특히 그 중에서도 공무원에게 조국을 위하여 신명을 다하여 애국하라, 그러면 그대는 죽은 다음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무언의 교시는 아닐까?


알링턴 국립묘지 쪽에서 디시 시내 쪽을 본 광경. 알링턴 브리지가 보이고 그 뒤로 링컨 메모리얼,워싱턴 모뉴멘트가 보인다.(사진 위키피디아)


도시전체가 인공으로 만들어졌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워싱턴 디시다. 200년 미국역사를 장구한 역사로 보이도록 그리스 양식의 건물을 지었으면서도 주변 자연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처음은 그리스 양식의 모방이었지만 어느새 아메리칸 양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의 선조들이 디시를 만든 예술적 감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워싱턴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95번을 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오면서 창가로만 본 볼티모어는 한 눈에 큰 공업도시다. 공장 굴뚝만 있을 것 같은 도시가 아니다. 도시 전체가 숲으로 쌓여 있어 우리의 회색빛 공업도시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후기>

워싱턴 디시는 1995년 이후 두 번을 더 갔습니다. 1997년 미국 유학 중 가족과 함께,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재직시절 공무차. 특히 2006년의 방미기간 중에는 국무성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그날 디시를 돌아다니면서 주차문제로 시간을 허비한 적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