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9 런던에서 나의 친구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박찬운 교수 2016. 8. 30. 01:51

영국이야기 9


런던에서 나의 친구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나는 이 동영상을 내셔널 갤러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 만들었다. 편집기술이 있다면 멘트가 틀려도 그냥 만든 다음 집에 와서 자르고 붙이면 될 텐데, 그런 기초적인 기술도 아직 터득치 못한 관계로, 단 한 번에 엔지 없이 녹화해야 했다. 말 한마디만 버벅대도 지우고 또 지우고해서 이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작년 한 권의 책을 냈다.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페이스 북에 고흐 그림 설명을 연재했고, 그 연재가 끝나자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는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할 때마다 고흐의 그림을 최우선적으로 본다. 고흐는 생전에 10년 정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누구보다 많은 그림을 남겼다. 900 여 점의 회화작품과 1,100 점 정도의 드로잉! 


그런 이유로 유럽의 유명 미술관엔 고흐 작품 한 두 점은 꼭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고흐의 대표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1888년 작 해바리기, 이 그림은 고흐 사후 그의 그림을 관리한 테오의 처 봉헤르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판 것이다. 그녀는 생전에 고흐 그림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싼값엔 좀처럼 팔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흐 그림은 해가 갈 수록 오르고 또 올랐다. 


영국에 왔으니 고흐 작품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몇 번 갔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 미술관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다. 그곳엔 고흐를 대표하는 몇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 나는 그 작품을 특별히 감상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내 책에서 언급한 세 점의 그림 <해바라기>,  <고흐의 의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이 있다. 이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특별히 하지 않는다. 관심 있는 분들은 내 책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1888년 작 의자. 나는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에서 이 의자가 고흐의 자화상이라 말했다.


이번 내셔널 갤러리 방문이 좀 더 특별한 것은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미술관은 그동안 엄격하게 사진촬영을 금해왔다. 나는 98년과 2012년 이 미술관에 왔지만 단 한 점도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2012년 방문 때는 경비원의 감시를 피해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촬영했지만, 워낙 다급하게 찍는 바람에 화면이 떨려, 어디에 내놓을 수 있는 사진이 안 되었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사진촬영 정책이 바뀌어 있었다.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작품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1889년 작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오른 쪽 사이프러스가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다.


"어떻게 해서 오래 동안 금지한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겁니까?" 

"모바일 폰 때문에 아무리 막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항복한 것이지요." 

부라보! 


1884년 작 농촌의 여인. 고흐는 1886년 파리로 옮길 때까지 5년 정도 고향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그 중 하나인데, 이 시절 고흐의 큰 관심사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어두운 색깔을 많이 썼기 때문에 파리시절 이후의 화풍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는 고흐의 그림이 있는 제45번 방에서 오래 동안 나오지 않았다. 찬찬히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다 사진만이 아닌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물론 동영상 촬영까진 허용되지 않는지 경비원이 다가워 두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나로선 결심한 일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1-2분의 간단한 동영상이지만 내겐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2016.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