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12 런던에서 칼 맑스의 흔적을 찾다

박찬운 교수 2016. 8. 31. 21:42

영국이야기 12


런던에서 칼 맑스의 흔적을 찾다



런던에 오면서 기회가 있는대로 인류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17세기 이후 영국은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위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상가 중 상당수가 영국에서 탄생하거나 영국을 배경으로 활동하지 않았던가. 그 중 한 사람이 칼 맑스. 잘 알려진대로 독일 태생의 맑스는 65년 생애의 절반 이상을 런던에서 보냈다. 그는 장년 이후 이곳에서 <자본론>을 썼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침에 갑자기 칼 맑스 생각이 나 구글 검색을 해보니, 그의 묘지가 마침 내가 머물고 있는 East Finchley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았다. 당장 그곳을 찾아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자못 흥분되는 마음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띄었다. 그의 묘지는 Highgate Cemetery라는 공동묘지에 있는데, 이곳은 런던에서도 풍광 좋기로 유명한 Waterlow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묘지 정문에 닿으니 아침 9시 반, 묘지 문은 10시에나 열린다고 한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맑스 생전에 그도 이 주변을 돌았을 지 모른다. 워터로우 공원엔 수령 수백년은 족히 될 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군데 군데 조그만 호수가 구름을 반사하고 있었다. 


이제 막 가을이 되는 듯 이곳저곳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넓은 잔디밭을 뒹굴고, 어느 중년의 여인은 고적한 벤치에서 개를 옆에 두고 책을 읽는다. 평화 그 자체!


10시가 되어 하이게에트 동문에 들어서니 금줄이 쳐져 있다.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이 묘지는 아무나 그냥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입장료를 낸다는 것이다. 묘지에서 돈을 받다니? 수많은 묘지를 출입했지만 돈을 받는 묘지는 처음이다. 나 말고도 한 두명의 관광객이 보였다. 그들도 모두 칼 맑스의 묘지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묘지가 운영상 어려움이 있어 입장료를 받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거의 모두 칼 맑스의 손님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맑스가 세상을 뜰 때 이 묘지에서 그를 알아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거렁뱅이에 가까운 빈자의 몸이었다. 그런 그가 이 묘지운영에 돈으로 기여한다니? 이 소식을 지하에서 맑스가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드디어 몇 분 후 나는 맑스의 묘지 앞에 섰다. 잠시 묵념을 했다. 자세히 살피니 이 묘지엔 맑스 외에도 그보다 2년 먼저 간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그의 손주 내외가 묻혀 있다. 맑스의 가족묘인 것이다. 


그는 영국에서 34년을 살다가 1883년 3월 14일 세상을 떴다. 그가 운명할 때 그의 옆에는 소수의 가족과 친구만이 있었다.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엥겔스는 추모사를 통해 "위대한 한 사상가가 이제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고 말했다. 그의 두 딸과 역시 사회주의자인 두 사위가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맑스의 사상에 관심을 갖든 말든, 그의 사상에 동의를 하든 말든,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가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노동해방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한 꿈일 것이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평소 사용했던 두 말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하라!" "세상의 철학자들은 많은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묘지 앞에서 간단한 동영상을 제작했다. 간단하고 엉성하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선물이다.



(2016.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