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복지

인간의 자존감에 대하여 그리고 의무급식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5. 9. 26. 22:00

[인간의 자존감에 대하여 그리고 의무급식에 대하여]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행복을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존감이다. 나 자신을 하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한 그에게서 진정한 행복은 찾을 수 없다.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나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행복의 최소한의 조건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런 자존감은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도의 자기 수양을 통해 이것을 스스로 획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그것을 획득한다. 따라서 사회가 어떤 사람의 자존감 인정하고 키워주지 않으면 그것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사회 전체는 불행해줄 수밖에 없다.


자존감의 문제는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 사회엔 입시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거나 학교에 들어갔어도 반수를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존감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학교에 들어가면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살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의반 타의반 그런 고난의 길을 걷는다. 이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가 어떤 학교를 나왔든지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격려했다면 어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겠는가.


얼마 전까지 해도 이런 말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자존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딱 두 부류의 사람밖에는 없다고. 서울법대 출신과 서울의대 출신만이 대한민국에선 거칠 것 없는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말이 갖는 의미는 자못 심각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옥 같은 입시경쟁을 치루면서 좋은 학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사실 이런 심리적 요인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존감의 각축장이다.


학교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매우 부담스럽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해가 가면 갈수록 학교 서열화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국의 인재는 특정 대학으로만 모이고, 인재를 확보하지 못한 대학들은 점점 중심에서 멀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자존감을 잃는 학생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걱정스런 것은 자존감을 잃은 친구들의 장래다. 그들은 그 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실이 이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타인의 자존감에 대한 배려는 너무나 천박하다. 그들은 일찌감치 산 정상에 올라가 이제 산 기슭에도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왜 아직도 거기에 있느냐고 다그친다. 그들 중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들의 행동도 길바닥의 거렁뱅이에게 동전 한잎을 던져주는 선심 이상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의 자존감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이번에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그는 돈 없는 사람만을 골라서 선별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자존감은 고려하지 않았다. 학교 가서 공부하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그 예민한 감정,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재수도 반수도 마다하지 않을 아이들의 자존감은 그의 안중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강자의 만행이다.


홍지사의 복지관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적선에 불과하다. 적선적 복지관은 있으면 주고, 없으면 안 줄 수 있는 강자의 논리에서 나온 사고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대한민국의 복지는 분명 그런 게 아니다.


복지는 공동체 구성원의 리스크(실업, 장애, 질병, 무지, 빈곤)에 대하여 공동체 모두(국가)가 부담하는 의무이다. 따라서 그 복지의 수혜자는 이제 적선의 대상이 아닌 엄연한 권리의 주체다.


학교 급식이 복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의무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것을 받는 사람 모두에겐 권리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은 국가에겐 의무급식인 셈이다.(2015.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