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인문명화산책

인문명화산책1아이들의 놀이

박찬운 교수 2015. 9. 27. 05:27

인문명화산책1

[피테르 브뤼헬의 <아이들의 놀이>]


일요일 밤이다.
글쓰기 좋은 시간이다.
잠시 읽던 책을 덮고 페친들과 그림 하나를 감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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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 브뤼헬(1525-1569). 네덜란드 화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명 중 하나다(다른 한 명은 요하네스 베르메르).


미술사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엔나 예술사미술관(비엔나 쿤스트)에 가서 브뤼헬의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거기서 13-4점의 그림을 보았는데, 내겐 큰 충격이었다. 16세기 작품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나는 브뤼헬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유럽의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내겐 그 어떤 작품보다 브뤼헬 작품을 보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나는 그가 남긴 45점 중 3분의 2에 가까운 그림을 보았다.


오늘은 내가 본 브뤼헬 그림 중 <아이들의 놀이>(비엔나 쿤스트 소장)를 보자. 이 그림은 16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방의 아이들의 놀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80개가 넘는 각종 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림을 잘 보면 이 당시 플랑드르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면서 놀았는지를 알 수 있다. 목마 탄 아이,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허리를 굽힌 아이 등을 짚고 뛰어 넘는 아이, 물구나무 선 아이, 허리를 굽힌 아이의 등 위를 올라타는 아이(말뚝박기) 등등...


브뤼헬이 활동하는 시기는 르네상스의 바람이 유럽을 강타하던 때였다. 더욱 스페인 치하에서 가톨릭의 강력한 영향을 받던 네덜란드에는 종교개혁의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종주국인 스페인과 전쟁을 치른 뒤 독립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브뤼헬이 활동한 플랑드르 지방은 가톨릭의 영향이 여전했다. 이런 때에 그는 전 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만의,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일견하여 인간의 시대에 걸 맞는 그림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네덜란드 르네상스는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독특하다. 그곳의 그림은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림은 일반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대상이었다. 화가들은 서민의 삶과 자연을 과장됨 없이 그렸다. 그런 중에서도 브뤼헬의 그림 주제와 화풍은 단연코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브뤼헬 외에 누가 아이들이 뛰어 노는 그림을 그렸는가? 내가 아는 한, 없다.


나는 <인권법> 강의를 할 때 곧잘 이 그림을 꺼내놓고 르네상스기의 인권을 이야기한다. 네덜란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 대해 토론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놀이’는 하나의 권리다. 아이는 푸른 하늘 아래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어른은 그 환경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이런 아이들의 놀이의 권리가 언제부터 어른의 인식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을까?


브뤼헬의 이 그림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 더 없이 훌륭한 교재가 된다고 믿는다.(2015.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