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

박찬운 교수 2018. 10. 15. 10:55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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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가를 정리하다가 옛날 쓴 글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소개한다. 대학 3학년 시절(만 21세)의 글인데, 나는 그 때 한참 고시공부 중이었다. 겨울방학 직전 고시반 기숙사에서 쓴 글이다. 긴 글이라 앞뒤를 빼고 중간 부분만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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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어보니 내 문체가 어쩐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약간 신파조다. ㅎㅎ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내 20대 초의 상념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다. 마치 젊은 시절 한 순간을 흑백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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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단지 환락은 아닌 것, 삶은 욕망과 결심. 인간은 가문으로서 고상해지지는 않는 것. 얼마나 많은 거룩한 이들이 살인자의 후예인가? 환락, 가문은 내가 갈 곳이 아니다. 순결한 가슴과 영혼의 순수함만이 내가 가야 할 곳.

영일 없는 날들을 보내면서 마음을 한 번도 비울 것 같지 않다. 욕심과 질투로 한 겨울을 보낼 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와 같은 생활들이 지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옥은 그보다는 공허한 가슴 속에 있으니까.

내 자신이 나를 탐미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실상은 꽤 탐미적 생활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일단 아름답게 보는 것, 아스팔트 위에라도 꽃은 피워야겠다는 것, 밤하늘의 별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등등. 남달리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탐미적이다. 나는 아직도 바야흐로 10대의 청순한 소년인가? 이 모든 것들이 83년 가을을 기해서 유난하게도 심각하다.

이러한 앳된 생각은 때로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으로 충격을 받는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나 자신의 현실생활에서 결코 굴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몸부림은 아닌지?

어제는 절친한 친구 Y군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차에 나를 방문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생김새는 자유방임적이지만 마음은 이 놈 또한 꽤 애절하다. 많이 변한 모습에서 기죽은 기분을 안고 술집으로 직행했다. 처음부터 군대 이야기를 해 지겨운 점도 있었지만 이놈 푸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 내 임무로 생각하고 경청했다.

국민윤리 공부는 나도 하고 있지만, 이건 필요 없는 낭비라고 확신한 것은, 이 친구의 확고해진 국가관 때문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군대교육이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감도 했지만, 하여튼 이 친구의 말은 국민윤리 만점에 가까운 자세다. 나 자신이 국민윤리적 사고방식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이 혹시 고시와 인연이 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끔찍한 일이다.

... 이 친구의 이 말은 내가 잊지 못하겠다. ”너희들이 데모를 할 때 우리의 고통(훈련)은 얼마나 심해지는지 아니, 너희들이 데모를 할 때 불쌍한 60만 대군은 너희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를 간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해.“ 물론 이 친구가 군대에 가기 전부터 약간은 친여적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뼈저린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동안 내 10대의 청순한 소년 감정은 여지없이 상처를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친구는 군대를 가도 좀 쉬운 데를 갔으면 좋았을텐데 훈련 세다는 소위 ‘특수’자가 붙는 부대에 들어가니 그 현실이 얼마나 가련하겠는가.

하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친구가 죽음이라는 말을 했을 때,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을 때, 단지 생명의 단절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도 가능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나의 탐미는 여지없이 송두리째 뽑혀버리고, 오직 나 자신의 엄혹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