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

박찬운 교수 2018. 10. 28. 05:36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김윤식 선생(1936-2018)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타계했다. 선생은 학문 없는 세상에서 학문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실천한 분으로 통한다. 그의 삶은 오로지 공부의 연속이었다. 오로지 읽고 오로지 썼다. 200권이 넘는 저서가 그의 삶을 오롯이 증거한다. 그의 학문하는 자세,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에 존경의 염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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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이 보여준 학문하는 자세는 그 길에 들어서길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 없이는 어떤 이도 제대로 된 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 이런 말이 얼마나 공감을 받을까 만은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버릴 수 없다. 그것이 한심한 현재를 이길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학문하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현실에 굴복하는 지식 기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학문하는 이의 이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공처럼 푸르고 높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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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하는 자세에 관해서 말할 때 막스 베버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소책자에서 학자가 갖추어야 할 내적 자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막스 베버(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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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전율한다.

“나는 과연 어떤 문제에 ‘내 영혼의 운명’을 걸면서 침잠해 본 적이 있었는가. 그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없다는 각오로 몸과 정신을 불태운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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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이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자—베버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학문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고 함—는 학문을 단념하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한 대학의 연구실을 차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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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딴에는 호기심도 많다고 생각했다. 내 딴에는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내 딴에는 업적도 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학문하는 자세는 멀었다. 소명과 열정에서 나는 김윤식 선생이 보여준 학자로서의 자세나 베버가 말하는 학문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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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이 부족하다. 학문의 문외한으로부터 조롱받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학문의 열매를 위해 인내하기보다는—천 년은 고사하고 단 몇 년도 참아 본 적이 있었는가!—하루하루의 만족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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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자. 그것을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골방 속으로 들어가 인내하면서 책을 읽고 글다운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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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면서 나를 돌아본 아침이다.

김윤식 선생님, 영면 하소서!

(2018.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