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중해야 할 일
방금 전 논문 작성을 거의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저널에 보내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받고 그것을 반영해 원고를 수정하면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제 글이 세상에 나올 것 같습니다. 이번 논문은 근래 보기 드문 창의적인 글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뿌듯합니다.
연구자는 논문을 쓰는 게 가장 큰 일입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수들의 논문 부담은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지 못하면 교수직을 계속하기 힘듭니다. 과거 로스쿨이 시작되면서 많은 실무 법조인들이 교수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학교를 떠난 것은 돈 문제도 있긴 하지만 논문 부담도 컸을 겁니다. 실무가들이 단기간 내에 작성하는 법률서면과 교수가 연구역량을 보여주는 논문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실무가 출신 교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이 다름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도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저는 실무가 출신 교수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20여 년간 적잖은 글을 썼습니다. 나름 의미 있는 논문을 써왔고 일찌감치 전공서도 몇 권 출판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대중적인 글도 많이 썼습니다. 그러니 실무자 출신으로서는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에 속할 겁니다.
그런 저에게도 논문은 항시 부담이 됩니다. 특히 제 전공은 인권법이라 일반 법학 교수들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글 소재입니다. 이왕 글을 쓴다면 창조적이고 인권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런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 그런 주제를 찾아도 참고할만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 좋은 주제라 생각해 국내외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쓸만한 것을 찾지 못해 결국 글쓰기를 보류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주제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는 경우는 글 한 줄 한 줄 쓰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닙니다.
이번 쓴 글은 제가 인권위에 있을 때 조사관들에게 계속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퇴임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인권위 때보다 논리가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인권위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진정을 하면 그것을 조사해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 기능, 곧 조사구제 업무가 인권위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인권위가 20년 넘게 이 업무를 계속해 왔으니 이제 사건 처리의 노하우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3년간 경험한 바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입니다. 업무처리와 관련해 이론적 틀이 단단하지 못합니다. 저는 6개 소위원회 중 4개 소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인권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론적 토대 위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제가 작성하는 결정문을 통해 그 생각을 녹여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인권위를 떠난 뒤 그런 문제를 강조하는 인권위원이 없으니 제 노력의 소산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논문 쓰기였습니다. 인권위에서 갖게 된 문제의식을 논문으로 정리하는 일에 당분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두 편을 썼고 이번이 세 편째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작은 일 같지만 인권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의 인권위 사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정권 하에서 인권위가 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권위를 진정 걱정한다면 인권위를 바꿀 연구를 꾸준히 해나가는 게 그나마 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나이를 먹는지 여러 곳에 관심을 두기가 어렵습니다. 지적 호기심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글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적막강산 연구실이 아직 제가 있어야 할 곳인 모양입니다. 힘을 내자! 아자!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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