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새벽 단상-이제 혼자의 시간을 끝내야 하는가-

박찬운 교수 2023. 12. 8. 05:21
새벽 단상-이제 혼자의 시간을 끝내야 하는가-
 
 
 
지난 2월 공직 퇴임 후 오랜만에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봄학기는 3년 만에 수업을 하는지라 좀 부산하게 보냈지만 학기가 끝난 후부터 오늘까지 만 5개월 동안은 적막한 일상을 보냈다. 마침 한 학기 안식년이 주어졌기에 이런 생활이 가능했다.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6시가 되면 간단히 조리해 아침 식사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한 다음 오전 글쓰기를 한다. 11시가 되면 점심을 간단히 하고 산책길에 나선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근처 카페에서 카페라테 한잔을 마신다. 두 시쯤 집에 돌아와 오후 글쓰기에 몰두한다. 4시가 넘으면 아파트 내에 있는 스포츠 시설에서 실내 자전거를 30분쯤 세게 탄 다음 약간의 근육운동을 하고 사우나에 가서 땀을 뺀다. 6시 전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정리를 한 다음 7시부터 저녁 글쓰기에 들어간다. 2시간쯤 글쓰기에 집중한 한 다음, 9시 무렵 거실로 나가 뉴스와 EBS 세계테마여행을 시청하고 10시쯤 취침에 들어간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머리는 단순해졌다. 실적도 상당히 나왔다. 7월에는 인권에 관한 인문 고전을 풀어쓴 ‘자유의 인문적 사색’이 나왔고, 지난달에는 나의 인권위 생활 3년을 회고하는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가 나왔다. 더 큰 실적은 내 전공인 인권법 분야에서 나왔다. 8년만에 내 인권법 교과서 개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제3개정판. 책 전체를 손보았다. 본문의 상당 부분을 새로운 내용으로 교체했고 과거 것을 수정 보완했다. 자료편도 200쪽 이상을 업데이트 했다. 이 개정 작업은 이제 출판사로 넘어가 편집 중이다. 내 일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몇 번 교정작업만 하면 개정판은 내년 1월 말쯤 세상으로 나온다.
 
 
이 기간 중 몇 번의 예외는 있었지만 가급적 세상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고 세상에 상당한 책임도 있는 사람이지만,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역시 선택의 문제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지금은 이 일을 하는 게 더 현명한 것이고, 그것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일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제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세상을 돌아보니 역시 질곡의 시대이다. 한 줌 권력을 잡은 이들의 폭주는 계속되고 여기저기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혼자의 세계에서 이제는 벗어나 세상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누군가가 내 등을 미는 것 같다. 정치의 계절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권력을 향한 손짓이 난무하고, 4년에 한 번 서는 큰 장에 구경꾼들은 대접받는 주인이 된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정치의 계절에 나는 그저 대접받는 주인 행세하는 것으로 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질곡의 시대를 끝내는 데 내 미력을 바쳐야 하는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새벽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무엇인가 세상을 향해 발언을 해야 할 것 같다. 인권위 상황이 심상치 않다. 몇 몇 사람들과 뜻을 합쳐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두어 시간 후 나갈 보도자료를 마무리해야겠다. (2023. 12. 7.)